그린란드 병합, 파나마운하 재탈환, 캐나다의 美 51번째 주 편입까지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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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백악관에 재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9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째를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보다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며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전세계를 상대로 전례 없는 고강도 관세전쟁을 벌이는 한편, 안보 측면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동맹 경시 경향을 또렷하게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을 깎아내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서사를 수용했으며, 그린란드 병합, 파나마운하 재탈환, 캐나다의 미국 51번째 주 편입까지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허 행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구축한 세계 질서의 일부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전·현직 외교관 등 전문가들의 분석을 토대로 로이터통신이 27일 보도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우방을 소외시키고 적대국을 대담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그가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에 제동을 건 판사를 공격하고, 지원금 중단을 무기로 대학을 압박하는가 하면, 이민자들을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교도소로 이송하는 대규모 추방 작전을 단행했다.
민주·공화당 양당 정부에서 중동 협상가로 활동했던 데니스 로스는 "세계 질서가 큰 충격을 받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정책에 대비해 미국과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미국산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방위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체 핵무장론이 거론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경제적으로라도 중국과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백악관은 트럼프가 미국의 신뢰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반박하며, 오히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무기력한 리더십"을 바로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브라이언 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고, 펜타닐 유입 차단, 중국 압박을 통한 미국 노동자 보호,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정책 재개 등을 통해 미국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을 '착취해왔다'고 주장하며, 금융시장을 흔들고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대규모 관세 정책을 강행했다. 이에 세계 경제 둔화와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기존 정책도 사실상 뒤집혔다. 지난 2월 말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고성이 오가는 격론을 벌였다. 그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일부 포기하도록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나토에 대한 트럼프의 냉소적인 태도는 대서양 동맹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2월 총선에서 당선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니라 '아메리카 얼론(America alone·미국 외톨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트럼프는 전임 대통령들이 피했던 영토 확장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는 그린란드를 반드시 '미국이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캐나다를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가"라고 폄훼하고, 파나마운하를 재탈환하겠다고 위협했다.
각국은 트럼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유럽연합(EU)은 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대비해 보복 관세를 준비 중이며, 독일과 프랑스는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는 유럽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한국 역시 미군 철수 위협 등 트럼프의 정책에 긴장하고 있으나, 동맹 유지를 위해 협력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중국과의 무역 협력 강화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달 초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중국과 EU는 경제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추진한 정책이 자유무역, 법치주의, 영토 보전 존중을 핵심 가치로 하는 지난 80여 년간의 세계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애런 데이비드 밀러 선임연구원은 "아직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는 가지 않았다"며 "하지만 지금 우방과의 관계에 가해지는 손상과, 적대국이 얻는 이익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