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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50주년 베트남] 기쁨도 슬픔도 50년…“이젠 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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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04. 29. 13:15

분단·전쟁 겪은 세대 "힘들었어도 하길 잘했다"
젊은 세대에겐 축제…해외 디아스포라는 '검은 4월'
“과거의 전쟁, 같은 민족 사이 가르는 장벽이 되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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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관영 년전(인민) 주최 남부해방·통일 50주년(4월 30일) 기념 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하노이=정리나 특파원
아시아투데이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 "광활한 땅에 우리 형제들이 모이고 만남의 기쁨은 모래폭풍처럼 하늘을 뒤흔든다는 노래 가사처럼 딱 그런 기분이었다"

"통일이 됐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하노이 시민 마이(78)씨와 꾸언(83)씨는 베트남 국민가수 찐꽁썬의 '커다란 원을 잇자'란 노래의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주변의 노인들도 "통일의 기쁨이란 것이 이제는 전쟁이 끝났고, 가족·형제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것 아니겠느냐"며 한마디씩 보탰다. 꾸언씨는 "통일하겠다고 이웃들, 친구들이 죽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했어야 하는 일이고 하길 잘했다. 몇 년 전 온 가족이 남부 여행을 다녀오며 했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통일 50주년이 되는 30일을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시 중심부 호안끼엠 한켠에는 며칠째 긴 줄이 늘어섰다. 통일 50주년을 맞이해 관영 신문 년전(인민)이 전시회와 함께 특별판을 배부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시민들이 몰린 것이다. 특별판을 받으려는 '오픈런' 행렬과 기념사진을 찍는 인파로 문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친구들과 함께 이 곳을 찾은 대학생 짱(21)씨는 "태어났을 때부터 통일이 된 나라였고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전쟁 얘기를 많이 해주신 것 같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과 처음으로 하노이를 찾았다는 호치민시 회사원 마인(30)씨도 "우리 (젊은)세대가 통일의 기쁨이나 의미 이런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세대는 아닌 것 같다"며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선대가 물려준 큰 선물이자 유산인 것 같다. 분단이 계속 이어졌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했다.

통일 50주년 특별판을 받기 위해 '오픈런'을 하고 전시회에서 '인증샷'을 찍는 베트남 젊은 세대들의 모습은 흡사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30일 호치민시에서 열릴 대규모 퍼레이드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미 '국가 콘서트'로 불리고 있고, 리허설 과정에서 포착된 잘생긴 공안과 군인들은 일약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기성세대들은 "진중하지 못하다"며 혀를 차기도 했지만 통일 이후 찾아온 평화 속에서 자란 세대들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4월 30일이 모든 베트남인에게 기쁜 날인 것만은 아니다. 보트피플 출신의 부모를 둔 베트남계 미국인 프엉(42)씨는 "미국의 베트남인 디아스포라에서는 '검은 4월'이나 '국가적 한(恨)의 날'이라 부른다"며 "월남정권을 꼭두각시·괴뢰정권이라 부르거나 '항미전쟁'이라 강조하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짚었다.

통일 50주년을 맞이하는 베트남은 여전히 분단 상태에 놓인 한반도에도 각별한 메시지를 던진다. 베트남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을 함락, 월남정권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뤘지만 그 과정이 곧바로 완전한 화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통일 이후에도 분단과 전쟁이 남긴 아픔을 치유하고 세대·지역·이념의 차이를 넘어서기 위한 긴 시간이 필요했다.

통일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과거 남베트남(월남) 정부와 관련한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팝 그룹 뉴진스의 멤버이자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팜 응옥 헌)도 가족들이 패망한 남베트남의 깃발을 걸거나 관련 행사에 참석해 지지를 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베트남 팬들이 대거 이탈하기도 했다. 통일 그 자체보다는 이후 화해와 통합의 과정이야말로 더 큰 과제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베트남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남부해방기념일'만이 아닌 '국가 통일'을 함께 내세우고 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응우옌 반 넨 호치민시 인민위원장은 최근 현지 언론에 "승패를 가리는 전쟁이 아니라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평화가 찾아온 날 어떤 이들은 기뻐했고 또 어떤 이들은 슬퍼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개인의 슬픔은 국가의 기쁨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도 이번 50주년을 앞두고 28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국가 통일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미 충분한 역량·신념·자부심·포용력을 갖춰 고통을 함께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이제 과거의 전쟁은 락홍(어우락과 홍방씨족·베트남 민족 기원의 상징) 혈통을 가진 이들의 사이를 가르는 장벽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족 화합은 역사를 잊거나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관용과 존중의 정신 속에서 서로 다른 관점을 수용하고, 더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며 "그 목표는 후손들이 다시는 전쟁·이별·증오와 상실을 겪지 않도록 평화롭고 통일된, 강대하고 문명화된 번영하는 베트남을 건설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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