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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3월 21일 CTS기독교TV '내가 매일 기쁘게'에 출연했던 서대천 목사는 “제가 목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어린 영혼들을 보듬는 주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시며 헌신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도와 가르침 때문”이라며 “저의 아버지 서효근 목사는 김용기 장로님과 함께 농촌계몽운동을 했다. 그후 어머니 이의순 선교사는 아버지 서효근 목사와 함께 고통과 고난으로 방향을 잃은 어려운 농촌에서 교회를 개척하시며 농촌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이 되면 다시 다른 농촌으로 이동해 개척하는 등 가난하고 힘든 농촌의 7개 교회를 개척하시고 주님이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의 농업과 새마을정신의 모태가 되었고 국민정신교육의 밑거름이 된 가나안농군학교의 전경 / 사진=CTS기독교TV '내가 매일 기쁘게' 캡처 |
서대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공동회장이며 홀리씨즈교회 담임목사의 모친 이의순 여사(향년 95세)가 지난 5일 오후 6시 12분, 주님의 손을 잡고 이 땅의 여정을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며 평안히 소천했다.
주님의 빛과 소금의 삶을 실천하며 한평생 복음 전파에 헌신해온 이의순 여사는, 남편인 고(故) 서효근 목사의 동역자로서 복음이 닿지 않는 곳을 위해 무릎으로 섬기며, 1960년대 가난한 농촌교회 개척과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한 믿음의 여정으로 한국교회에 신앙의 본을 남겼다.
고인은 만주에서 태어나 평안북도 용천군 내증면에서 성장했고, 월남 후 국립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서효근 목사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남편 서효근 전도사의 가나안교회 교역 사역을 지원했으며, 동역자로서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에 참여해 농촌 복음화에 기도와 헌신으로 일관한 선교사였다.
충남 서산군 옥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사모의 길에 들어섰으며, 서천군 기산면 두문교회 헌당, 정읍 신태인 중앙영생교회 개척, 보은교회 창립 및 헌당, 무주 이목교회 사역 등을 내조했다. 1983년 남편 서효근 목사가 소천한 이후에는 평창교회를 설립하고 농촌 선교 사역에 헌신하던 중 무리로 쓰러졌고, 2010년 수술을 받은 뒤에는 자녀들의 돌봄 속에서 지냈다.
이의순 기도 선교사는 1973년 6월 21일부터 세계 158개국을 위한 기도를 시작해 50년 동안 95세에 이르도록 쉼 없이 기도하며 기도 선교사의 삶을 실천했다.
서효근 목사는 1950년대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의 비서로 국정에 참여했으며, 새문안교회 전도사로 주일마다 청년들을 가르쳤다. 그는 그 시절 김용기 장로와 뜻을 같이해 “농촌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신념 아래, 6·25 전쟁 후 폐허가 된 농촌을 되살리는 계몽운동에 나섰다. 이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을 주도하며 한국 농촌 부흥과 국가 발전의 토대를 놓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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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농업과 새마을정신의 모태가 되었고 국민정신교육의 밑거름이 된 가나안농군학교의 교회 전경. 맨 뒷줄 중앙에 이의순 사모의 남편 서효근 목사. 그는 김용기 장로와 함께 기독교의 청교도정신으로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해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서효근 목사는 젊은 시절인 1952경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의 비서로 국정의 업무를 맡았다. 또한 주일날 청년들을 지도했던 새문안교회 전도사이기도 했다. 이의순 사모는 서효근 목사와 가나안농군학교가 자립하게 될 때 고통과 고난으로 방향을 잃은 어려운 농촌 현장으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를 개척하며 농촌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사진=홀리씨즈교회 |
서대천 목사는 “어머님은 아버님의 평생 동역자로서 고된 삶 가운데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셨고, 자녀들에게는 믿음의 유산을, 이웃에게는 사랑과 기도의 향기를 남기셨다”며, “마지막 숨결까지 ‘주님 감사합니다’를 고백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을 인용하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고 많은 열매를 맺듯, 어머니의 삶이 그 말씀의 실현이었다”며 “이제 믿음의 경주를 마치신 어머님은 의의 면류관을 받으셨고, 믿음의 눈으로 그 영광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이어 “육신의 장막은 무너졌지만 천국에 있는 영원한 집이 준비되었기에, 우리의 시선은 땅이 아니라 천국을 향한다”며 천국의 소망을 밝혔다.
장례예배는 미국 체류 중인 가족들의 귀국 이후인 8일 오후 7시 30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층 31호에서 엄수되며, 발인은 10일 오전 5시, 고인은 부산 양산 석계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조문은 8일 오전 11시부터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가능하며, 장례는 홀리씨즈교회장으로 경건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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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순 사모의 남편 서효근 목사는 1952년경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의 비서로 국정의 업무를 맡았다. 그후 김용기 장로와 함께 기독교의 청교도 정신으로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후 어려운 농촌 현장으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를 개척하며 농촌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이의순 사모는 서효근 목사와 함께 가난하고 힘든 농촌의 7개 교회를 개척했다. 이의순 사모가 서효근 목사와 헌신하며 섬겼던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소재한 ‘이목교회’ 전경. |
서 목사는 “어머님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정성껏 섬긴 동생 완실이를 비롯해, 마음을 함께 모아준 형제자매들과 기도로 동역해준 모든 성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홀리씨즈교회는 우리 가정의 믿음의 울타리였고, 어머님 또한 이 공동체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다. 그 기도의 유산을 이어받아 복음 앞에 더욱 순전한 교회로 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우리 모두가 ‘잘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의순 선교사의 신앙 유산을 이어받은 서대천 목사는 30여 년간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며, 절망에 빠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복음적 교육과 회복의 사역을 감당해왔다. 그는 또한 세계청소년문화육성협회 이사장으로, 한국과 열방을 향한 다음세대 사역의 비전을 품고 있다.
서 목사는 월드허그파운데이션 아시아대표로 활동하며, 미국 연방 하원의회에서 ‘입양인 시민권법’(Adoptee Citizenship Act) 통과를 위한 외교적 역할을 감당한 바 있다. 2023년 6월 뉴욕주 의회에서는 입양인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공식 연설도 진행했다.
또한 그는 극동방송이 주관한 제9차 미스바 기도회와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앞둔 연합기도회를 극동방송 아트홀에서 인도했으며, 과거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사회를 맡아 기도회를 섬긴 바 있다.
국민일보에 20회에 걸쳐 연재한 청소년 회복 칼럼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성산전도집회를 통해 ‘회개·말씀·전도’의 부흥을 선포하며 한국교회에 새로운 영적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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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천 홀리씨즈교회 목사가 극동방송에서 주관한 제9차 미스바 기도회 설교와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를 앞둔 기도회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2023년 5월 23일 극동방송 아트홀에서 인도했다. / 사진=극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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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천 목사는 “아버님께서 김용기 장로와 함께 설립한 가나안농군학교의 유업과, 일평생 농촌 복음화에 헌신하신 그 믿음의 길을 잇고자, 오늘도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고백했다.
홀리씨즈교회 관계자는 “사랑하는 어머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천국의 본향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인간적인 슬픔은 크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기도와 눈물로 교회를 세우고 오직 예수님만을 전하신 어머님의 삶은 모든 성도들에게 큰 은혜와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고인의 마지막 신앙고백인 ‘주님 감사합니다’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소망이 없습니다'는 한국교회에 선명한 믿음의 유산이며, 그 믿음의 씨앗이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의 회복으로 이어지고, 열방에 복음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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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천 월드허그파운데이션 아시아대표(가운데)가 2023년 6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의회 연설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지만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입양인들 처우개선을 위한 ‘입양인 시민권법’ 제정에 심혈을 기울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연설했다. 왼쪽부터 미국 뉴욕주 의회 에드워드 깁스 하원의원, 서대천 대표, 존 박(통역). / 사진=미국 뉴욕주 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