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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로] 효를 잊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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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혁 기자

승인 : 2025. 05. 08. 16:50

사랑 담아 전달하는 카네이션<YONHAP NO-4194>
지난 7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노인복지관에서 어린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지환혁 사진
지환혁 사회부 차장
어버이날을 맞아 문득 학창시설 배웠던 시조 한 구절이 떠올랐다. 조선 선조때 정치가이자 작가로 널리 알려진 송강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중 첫 수(首)다. 학창시절 시험에 나온다 해서 반드시 외워야만 했던 시조였다.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아직까지 기억에 남았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마 어버이날이었기에 떠올랐지않나 여겨진다.

"어버이날 다가오는데 부모님 용돈은 얼마 드릴거냐" 물어보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어떤 이는 "얼마나 했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개인 사정까지 대답하긴 싫어서 얼버무렸다. 그러나 사실 용돈을 얼마나 드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액수로만 평가되는 사회. 효는 이제 정서가 아니라 경제 행위가 되어버린 것이 서글펐다.

'효를 잊은 사회'가 되어가면서 패륜적 범죄 행태가 종종 나타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지난해 말 공동으로 발간한 2023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확인된 노인학대 행위자 대부분이 자녀를 포함한 가족이었다. 특히 경제적 학대의 경우 자녀가 가해자인 경우가 58.4%에 달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이 부담이 되고 간병이 짐처럼 느껴지며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관심하거나 방임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심지어 정신적, 신체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우리 법도 패륜적 행위를 벌이는 자녀들에게 더이상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법은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경우라도, 상속인 결격 사유에 포함치 않았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패륜적인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일이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보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연말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만 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모에 대한 방임과 학대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오죽하면 법으로 패륜을 정하는 일까지 벌어졌을까.

물질적 궁핍이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왜곡시키는 일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자식에게도 생계는 버거울 수 있고, 부모를 온전히 돌보는 일이 감당하기 힘든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효가 경제적으로 환산되는 사회라면, 그 바탕에 깔린 가치는 이미 희미해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효를 잊은 사회'는 단순히 늙고 병든 부모를 외면하는 사회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과거를 잊고, 관계의 근본을 잊고, 인간다움의 뿌리를 놓쳐버린 사회다. 효는 단지 부모를 공경하는 도덕적 명제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신뢰의 끈이다. 그것이 끊긴 곳에는 불신과 고립, 해체된 공동체만이 남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이 아니라 부모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부모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현재와 외로움을 들여다보는 노력이야말로 잊힌 효를 다시 일깨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지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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