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판권 구입 등 기획·개발비 지원 절실
노동 유연성 적용 필요…영진위 역할 강화
영화제 예산 다시 늘려 새내기 발굴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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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인 올해 4월만 해도 한국 영화 매출 규모와 관객수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이상 줄어든 가운데, 벼랑 끝 불안감으로 허덕이고 있는 한국 영화인들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할 수 밖에 없다. "겪고 있는 위기의 정도만 놓고 보면 영화 지원책이 1순위로 올라와야 하는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등 세 정당이 발표한 공약집을 보면 영화는 구체적으로 언급조차 되지 않아 실망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관련 대책 수립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한 영화인의 호소처럼 한국 영화의 위기 탈출을 위해 제작과 투자·배급, 극장, 학계 등이 내놓은 다각적 제언을 새 정부 출범에 맞춰 한데 모았다.
▲신작 기획·개발의 마중물이 절실하다 = 오랜 불황에 CJ ENM과 쇼박스,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중앙, 뉴(NEW) 등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의 지갑이 닫히다시피 한 요즘, 돈줄이 말라버린 제작자들은 좋은 아이디어 혹은 원작이 있어도 이를 시나리오로 옮길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다. 이처럼 착수금이 없어 기획·개발이 어려워지다 보니 제작 편수가 줄어들게 되고 극장에 걸리는 신작 또한 감소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제작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액인 기획·개발비부터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제작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혜수 주연의 '굿바이 싱글'과 고(故) 이선균 주연의 '임금님의 사건수첩' 등을 제작한 영화사람의 최아람 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중예산 영화(순 제작비 20억원 이상 80억원 미만의 장편 실사 극영화)를 대상으로 편당 10억원 가량의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실시중인데, 문제는 이 같은 지원을 받고 싶어도 돈이 없어 기획·개발을 하지 못해 (지원 사업 공모에) 엄두조차 못 내는 제작자들이 수두룩하다는데 있다"며 "그럴 바에는 액수를 줄여 2000만~3000만원 수준의 기획·개발비 형태로 더 많은 제작자들을 지원하는 게 오히려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용처가 불분명해질 것을 우려된다면 웹툰 혹은 웹소설 등과 같은 원작 판권 구입비로 한정하는 방식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 52시간 노동의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익명을 요구한 모 제작자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므로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예산 규모에 맞춰 스태프와의 사전 합의를 전제로 유연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주 52시간 노동이 도입되고 나서 작업 시간이 늘어나면 예산을 초과할까봐 허겁지겁 촬영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잦아지다 보니 (한국 영화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낮아진 게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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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투자·배급업에도 종사한 적이 있는 이 관계자는 "통신사 할인 문제와 홀드백(극장 상영을 끝낸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다음 플랫폼으로 넘어가기까지의 기간) 의무화는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모태펀드 규제 개선까지 아주 민감하고 복합한 현안일수록 영진위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며 "우선 업계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귀담아들은 뒤,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일회성 보여주기가 아닌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학계는 재능있는 새내기 영화인들의 발굴을 위해 전 정부 시절 줄어들었던 각종 영화제 지원 예산을 다시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철승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박찬욱·봉준호·이창동·홍상수 감독 등의 뒤를 이을 차세대 영화 작가들을 찾아내고 양성하려면 극장이 아닌 곳에서 이들의 작품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비상업적인 무대, 즉 영화제가 다시 활성화돼야 한다"며 "올해 칸 국제영화제의 결과로 알 수 있듯이 예술로서의 한국 영화를 다시 살려내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