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이달 첫 1380원 돌파…코스피 한때 3000 ↓
환율 1400원 급등 가능성에…은행 외화 유동성 관리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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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리스크가 확대되며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심리가 강해지자, 1300원대 중반에서 안정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 역시 요동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 초 나타났던 강달러 흐름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각 은행들은 외화 유동성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중동 위기 대응을 위해 이날 리스크 대응 회의를 열고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각 은행은 외환 및 외화 자금시장의 유동성 흐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중동 사태 확전 시나리오별 증시·채권·환율 영향 등을 분석해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직접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수출입 기업에 대해서는 현장 점검을 통해 구체적인 자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국내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방안도 나왔다. 하나은행은 이날 긴급 임원 회의를 열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11조3000억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미국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들면서 국내 금융시장에도 충격이 불가피해졌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으로 수입되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봉쇄가 현실화될 시 국내 유가 급등과 함께 원·달러 환율 및 국내 증시에도 큰 충격이 예상된다. 실제로 새 정부 출범 이후 1350~1360원대에서 안정됐던 환율은 이날 1380원대를 넘어섰다. 3년 만에 30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지수도 장중 한때 30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은행들은 중동 위기로 인한 환율 변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환율 급등은 은행들의 위험가중자산(RWA) 관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기 외화자금 시장의 경색으로 외화 유동성 악화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동안 이어진 강달러 기조로 인해 주요 시중은행들의 외화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은 지난해 말보다 하락한 상태다. 외화 LCR은 은행이 외화 유동성 위기에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외화 LCR이 높을수록 외화 유동성 대응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외화 LCR 평균은 지난해 12월 말 176.4%에서 올해 3월 말 157.3%로, 불과 3개월 만에 19.1%포인트 하락했다. 기업들의 외화 자금 수요 증가로 인해 은행의 외화 순현금 유출이 확대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며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경우, 외화 유동성 지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하락하면 환차익을 노린 자금이 은행 외화예금으로 유입돼 외화 유동 자산이 늘어나지만, 환율이 급등하면 환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외화예금 잔액이 감소한다. 실제로 5대 은행의 달러 예금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했던 지난해 말 637억 달러에서 3월 말 580억 달러로 급감했다가, 환율이 1400원 아래로 내려간 5월 말에는 626억 달러로 다시 증가했다. 환율 상승으로 외화 유동 자산이 줄어 외화 LCR이 추가로 하락할 경우, 은행들의 유동성 위기 대응 역량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보복 수위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향후 1~2주간은 중동 정세의 추가 악화와 변동성 확대를 염두에 둬야 한다"며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원·달러 환율은 강달러 흐름과 위험 회피 심리로 140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훈 KB경영연구소 박사도 "이란의 보복 강도가 높고 이스라엘·미국이 다시 대응하는 국면이 지속될 경우, 국제유가 및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