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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창업을 넘어 스케일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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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6. 27. 16:12

신은혜 변호사
신은혜 변호사(벤처캐피탈 500글로벌 투자심사역)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난 10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창업 문화의 확산 등이 맞물리며 창업 건수는 증가했고, 유니콘 기업도 다수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으며, 여전히 내수 중심의 플랫폼 기업에 집중돼 있다. 특히 인구 감소와 소비시장 위축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이제는 스타트업에도 외연 확장이 가능한 글로벌 진출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이 가진 산업적 강점은 분명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집적도 높은 산업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 중 하나이다. 특히 이차전지, 화학소재, 정밀제조, 전자부품, 조선, 방위산업 등은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력과 공급망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고도화된 제조 기반과 공급망 인프라도 이미 구축돼 있다. 또 대기업으로부터 이어지는 산업 가치사슬은 스타트업에 기술적 협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한국의 R&D 투자 비율은 GDP 대비 5.0%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며,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선진국을 앞지르고 있다. 특히 기업 부문이 전체 R&D의 약 80%를 차지하며, 민간 중심의 기술 혁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스타트업이 기술력을 확보하고 시장 진입을 준비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전국 단위로 구축된 초고속 유선망과 5G 이동통신 인프라, 고밀도 도시 구조 또한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분석, 자동화 시스템 구축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하드 인프라와 기술 경쟁력이 스타트업의 글로벌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책과 자본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의 벤처 생태계는 창업 초기 단계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기술 검증, 제품화, 시장 확장으로 이어지는 스케일업 단계에는 자금 공백이 존재한다.

특히 초격차 분야의 딥테크 스타트업의 경우 '1에서 10', 혹은 '10에서 100'으로 가는 후속 성장 전략이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이 구간에 대한 자본과 정책의 뒷받침은 매우 미비하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우수한 R&D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업화에 실패하는 것은 기술력 부족이 아닌, 실증·시범 도입·시장 접점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이제는 창업 자체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기술 검증을 마쳤거나 PMF(Product-Market Fit)를 이미 확보한 기업에 충분한 자원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따라서 정부는 자금 지원뿐 아니라 대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 공공조달 연계, 기술 실증 환경 제공 등을 통해 스타트업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구조를 보완해야 한다.

정부 창업 정책은 여전히 초기 기업 대상의 자금 직접지원 방식에 집중돼 있다. 기술 검증 이전 단계의 예비창업자에게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한 자금을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의 지원은, 시장 기반의 투자 판단과는 무관하게 자원이 분산되는 구조적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동일한 예산을 전문 운용사에 출자해 간접적으로 시장에 자금을 공급할 경우, 각 펀드는 자율성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자금을 집중할 수 있다. 성과보수를 받는 민간 운용사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택할 유인을 가지며, 이는 정부 예산의 효율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벤처캐피탈의 역할도 확장돼야 한다. 단순한 소수지분 투자자를 넘어, 기술·팀·기회를 조합하여 성장 전략을 설계하는 전략적 투자 시도 또한 어느 정도 요구된다. 대학과 연구기관의 우수 기술을 스타트업과 연결하는 컴퍼니빌딩형 투자, 특정 테마 중심의 M&A 및 Roll-up 전략, 산업을 리빌딩하는 전환 투자 등 다양한 방식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Khosla Ventures, General Catalyst 등은 기술 테마 기반의 산업을 통합하는 새로운 전략을 취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한국 딥테크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업 기반 기술력과 함께 이를 전환시키는 정책적 기획력, 그리고 민간 주도의 실행력이 필요하다. 창업은 시작일 뿐이며, 성장과 확장을 위한 정교한 설계와 집중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는 한국 스타트업 정책이 양적 창업 지원을 넘어, 전략적 글로벌 도약을 위한 생태계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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