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 없던 관극이 전한 울림, 동화 이후를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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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관람이었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오히려 그 즉흥적인 선택에 감사하게 되었다. 젊은 창작자들의 고민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이 숲속으로는, 예상보다 훨씬 깊고 넓은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이 작품은 스티븐 손드하임과 제임스 라핀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손드하임 특유의 촘촘한 음악 구성과 전복적인 이야기 구조, 복합적인 감정선을 대학생들이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깊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졸업 작품이 아니라, 제작 전반을 학생들이 주도한 하나의 '창작 실험'이자 협업의 정점이었다.
공연의 초반부는 익숙한 동화의 조각들로 시작된다. 신데렐라, 빨간 망토, 잭과 콩나무, 라푼젤… 그리고 이들을 잇는 베이커 부부. 초반 넘버 'Prologue: Into the Woods'부터 등장인물들은 복잡하게 얽힌 소망을 각자의 화성으로 풀어낸다. 이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 앙상블은 놀라울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배우들의 발성은 선명했다. 특히 다양한 캐릭터의 성격과 목소리가 중첩되는 장면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호흡은 공연 전체를 단단히 끌고 가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숲속으로'가 진짜 깊이를 보여준 것은 2부였다. 동화가 끝난 후의 세계, 곧 '이야기의 끝 이후'로 향하는 후반부에서 배우들은 감정의 밀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극의 전개에 따라 인물 간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선택의 무게가 깊어지면서, 무대 위에는 단순한 서사 이상의 정서적 파동이 일었다. 특히 주요 장면에서는 절제된 움직임과 밀도 높은 감정 표현이 조화를 이루며 관객의 몰입을 끌어올렸고, 몇몇 넘버에서는 울컥할 정도로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공연의 정서적 균형을 단단히 잡아주며, 숲을 통과하는 여정을 더욱 실감나게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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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졸업공연의 안무는 감정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이지은 교수가 지도한 안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대사나 노래가 담아내지 못한 감정과 갈등을 움직임 속에 녹여냈다. 'It Takes Two'나 'Moments in the Woods' 같은 장면에서는 배우 간의 긴장과 유대가 자연스럽게 몸짓으로 드러나며, 관객의 몰입을 한층 끌어올렸다.
기술 스태프의 활약 또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명은 이야기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분할하며 인물의 심리와 장면의 전환을 명확히 했고, 무대와 소품은 제한된 공간에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며 숲이라는 공간의 복합성을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소극장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창의적으로 돌파해낸 무대 디자인은 특히 주목할 만했다.
졸업공연은 종종 '연습의 결과물'이나 '학창 시절의 마무리'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숲속으로는 그 틀을 가볍게 넘어서 있었다. 공연은 전문 무대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주면서도, 학생들만의 감각과 언어, 고민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지금의 무대'였다. 익숙한 형식을 답습하기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점이 더욱 인상 깊었다. 손드하임이 말하는 '욕망 이후의 세계'를 이들은 단순히 연기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며 관객과 공감하고 질문을 나누었다.
공연이 끝난 뒤, 극장을 나서며 머릿속에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작품의 마지막 넘버이기도 한 이 문장.
"Children will listen."
세상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이야기 또한 말할 줄 아는 젊은 예술가들. 그들이 지나온 무대의 흔적이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서 더욱 빛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여정을 응원하는 관객 중 한 사람으로, 이 무대와의 만남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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