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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P-3CK 대잠초계기가 이착륙 훈련을 위해 포항기지에서 이륙했다가 인근 야산에 추락한 것은 5월 29일 13시 49분이었습니다. 이 초계기는 미국 록히드마틴이 1960년대 초반에 개발한 항공기로서 한국 해군은 1995년에 P-3C 8대를 도입했고, 이후 미군이 예비용으로 보관하던 P-3B 8대를 더 들여와서 P-3CK로 성능개량을 하여 운용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16대의 초계기들은 부지런히 동·서·남해를 지키는 불침번 임무를 수행했지만, 개발 후 60년이 지났고 사용 기간도 30년을 넘긴 노후기들이어서 '기체 혹사'로 인한 사고 우려가 끊이지 않던 중이었습니다. 결국, 그 우려했던 사고로 네 명의 젊은 장병들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천금 같은 남편을 잃은 아내들과 생때같은 아들을 떠나보낸 부모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오열했고, 아빠를 잃은 철부지 금쪽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6월 1일 영결식장엔 동료·전우들의 통곡이 메아리쳤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기장 박진우 중령, 부기장 이태훈 소령, 전술사 윤동규 상사, 전술사 강신원 상사…. 하늘에 계신 분이시여, 부디 이들의 영혼을 거두시고 천상의 잔치에 초대하소서.
바다사랑해군장학재단은 전사·순직하신 해군 장병들 유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2014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여기에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2011년 1월 18~21일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된 해군 최영함의 청해부대가 기습작전을 통해 한국 화물선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을 소탕하고 선원들을 구출한 작전입니다.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의사의 영웅적인 스토리는 온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후 열린 해군발전자문위원 전체회의에서 자문위원장이었던 저는 해적들이 기습을 눈치채고 매복했더라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아찔했던 순간들을 회고하면서 "전사·순직 장병보다 민주화 운동가가 더 많은 국가 보상금을 받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외쳤습니다. 그리고는 전사·순직 장병의 유자녀 학자금을 돕는 별도의 장학재단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전원의 찬성으로 모금을 시작했고, 모금액이 3억원을 넘기면서 해군에 인계하여 재단법인이 설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조그마한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이후 해군 장병, 기업, 국민들의 성원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매년 수십 명의 유자녀들에게 학비를 돕는 재단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있었기에 6월 25일 장학기금 및 위로금 전달식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3억9100만원을 모금한 신인균 국방TV 대표 신인균 박사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2억원을 장학재단에 전달했고, 1억6100만 원을 고 박진우 중령의 미망인에게 그리고 1000만원씩을 나머지 세 분 순직자의 유족에게 위로금으로 기부했습니다. 고 이태훈 소령 부친의 감사글도 소개되었습니다. "우리 태훈이의 한 줌 유골만 받았습니다. 울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습니다…." 신 박사는 결코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박 기장의 미망인도 인사말을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아빠처럼 씩씩한 남자로…" 그녀 역시 인사말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장학재단 이사들과 해군 관계자들은 무거운 숙연함에 압도당한 채 눈시울을 붉혀야 했습니다.
6·25는 오늘을 사는 우리 후세들에게 많은 일깨움을 강요하지만, 이 땅에서 그날의 참상이 되풀이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뼈에 사무치는 일깨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64만 명의 군경 부상자와 사망자, 북한군에 의한 학살·실종 등 100여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기록하고 무수한 생이별과 사별을 양산했던 그 전쟁을 다시 겪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우리 장병들은 부릅뜬 눈으로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누비고 있습니다. 군대는 국민의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합니다. 국민이 군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군대는 성장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지난 6월 25일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재확인한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감동과 눈물 속에 보낸 잊지 못할 하루였습니다. 해군 동료와 전우들이 보여준 위로와 추모, 모금을 결심한 신인균 박사, 사흘 만에 4억원에 가까운 돈을 기부하여 주신 6108명의 우리 국민…. 제 눈엔 모두가 영웅이었습니다. 왠지 그 젊은 미망인이 딸 같았습니다. 남겨진 그 아이가 손자처럼 느껴졌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리는 그들 모자를 향해 마음속으로 힘껏 외쳤습니다. "부디 잘 살아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바다사랑해군장학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