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등 영향
'안전 자산' 위상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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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초강경 관세 방침에서 한발 물러서고 미국 증시가 회복세를 보였음에도 달러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달러화는 미국의 주요 교역국 통화 바스켓 대비 10% 이상 하락했다. 이는 1973년 미국이 금본위제를 공식 폐지하며 큰 전환점을 맞았던 이래 가장 큰 낙폭이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적 외교정책과 관세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 시도가 시장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무역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인플레이션 우려, 급증하는 정부 부채가 복합적으로 달러에 하방 압력을 가했다.
달러화 약세로 미국인의 해외여행은 더 비싸졌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미국 투자 매력도 떨어지고 있다. 이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려는 시점에서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직후에는 달러가 강세를 보였다. 시장은 그를 친성장·친기업 인사로 판단해 미국으로의 투자 기대감이 높아졌고, 이는 달러 수요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은 오래가지 않았다. 1월 중순 정점을 찍은 이후 달러는 내림세로 돌아섰다. 친기업 정책에 대한 기대는 점차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의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로 대체됐다.
여기에 예상보다 훨씬 높은 관세 발표가 더해지면서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증시, 채권시장, 외환시장이 모두 패닉에 빠졌고,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는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높여 경기에 추가 부담을 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미국 자산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달러 및 미국 자산에 대한 수요는 더욱 위축됐다. 과거에는 미국이 글로벌 투자시장을 주도하며 외국 자금이 유입됐지만, 최근에는 그 흐름이 바뀌는 조짐이 보인다.
고관세는 수입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곧 해외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달러 수요를 줄이게 된다. 이는 다시 미국 국채 등 미국 내 자산으로의 재투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달러 하락은 미국 주식시장 수익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NYT는 짚었다. 최근 S&P500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올해 24% 상승했지만, 이를 유로화로 환산하면 상승률은 15%에 불과하다. 반대로 유럽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Stoxx 600 지수는 같은 기간 15% 올랐으나 달러로 환산하면 23%의 수익률로 미국 주식을 웃돌게 된다. 이에 따라 연기금과 대형 기금은 미국 외 시장에 더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재정 지출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채 발행 증가와 외국인 투자자 이탈이 겹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원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당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향후 10년간 수조 달러의 재정 적자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런 재정 부담을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확대하려 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 시장에서 한발 물러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시장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우려는 위기 상황에서 '안전자산' 역할을 해왔던 미국 국채와 달러의 위상마저 흔들고 있다.
통상적으로 시장이 불안정할 때 투자자들은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 믿는 자산에 자금을 옮기는데, 최근엔 시장이 출렁이는 와중에도 달러에 대한 신뢰가 약화해 오히려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달러가 지금은 투자자들에게 예전만큼 안정적인 피난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블랙록(BlackRock)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인 릭 리더는 최신 분기 전망 보고서에서 "달러가 완전히 기축통화에서 밀려나는 '탈달러화'가 현실화하기까지는 아직 먼 이야기"라면서도, "그러나 그 위험을 심각하게 키울 수 있는 요소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미국 정부의 증가하는 부채"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