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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통일부의 시대적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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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14. 17:58

조영기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전 고려대 교수)
통일부라는 명칭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난달 19일 '국정기획위원회'의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통일부 명칭 변경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고, 2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통일부 명칭 변경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변경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섰다. 사실 통일부 명칭 변경 논의는 3년 전에도 제기됐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대선후보는 통일부 명칭을 "남북협력부나 평화협력부로 정해 단기 목표에 충실하고, 이것이 장기적 통일을 이루는 현실적·실효적 길"이라고 했다.

명칭 변경의 명분은 '말로만 통일 외치면 통일은 더 멀어진다'면서 지금은 교류·협력이나 평화에 방점을 둘 시기이지 통일을 논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리고 통일 전 서독이 '전독일문제부'를 '내독관계부'로 명칭을 변경한 것을 준거의 틀로 제시했다.

1969년 서독 브란트 정권이 집권한 후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면서 동서독 교류가 시작됐다. 동방정책의 논리는 '접촉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aherung)'다. 이는 대화와 교류, 경제협력, 인도적 지원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 동독 내부의 변화를 유도해 통일의 길을 찾는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에 따라 '내독관계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명칭 변경과 무관하게 서독의 동방정책이 독일통일로 이어지면서 성공한 정책이다.

하지만 동방정책을 모방한 우리의 햇볕정책·포용정책(이하 대북정책)은 한반도통일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남북관계는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더 경색되고, 2023년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의 대북정책이 완벽히 실패했다는 증거다. 동방정책과 우리의 대북정책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추진됐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한 원인을 진단한 후 대북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우선 서독의 동방정책과 우리의 대북정책은 분단 상황에서 적대국과의 평화적 공존과 점진적 변화를 유도해 통일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목표는 같다. 이때 양국의 관계 개선 도구는 대화, 교류·협력, 민간차원의 인적 교류의 확대 등이다. 그러나 정책 추진 과정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선 국제환경에서 서독은 미소 데탕트와 동독의 경제난과 국제 고립의 상황에 있었지만 북한은 핵문제와 대북제재, 지속적 군사도발과 북한의 극단적 폐쇄성이 그 차이다. 또한 동독은 일정 수준의 제도적 개방과 서독과의 관계 정상화를 수용했다면 북한은 핵개발을 지속하면서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서독은 동독에 차관, 교역, 노동력 제공 등 비교적 상호 호혜적 지원을 하는 구조를 유지했다. 특히 호혜적 구조를 위한 경제지원 원칙은 ①동독이 먼저 요청하고, ②반드시 대가를 받은 후, ③동독주민이 서독의 지원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의 지원, ④ 청산결제의 준수였다. 이 원칙이 동독 변화 유도와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했다.

반면 한국의 북한지원 방식은 일방적인 무상원조 성격이 강했다. 즉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에 애걸하고 북한은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잘못된 구조가 형성되면서 대북정책 목표는 실종되고, 오히려 무조건적 지원이 북한의 비정상성을 심화·영속화시킨다는 문제가 대두되었고, 직접거래가 이루어져 뒷돈 거래의 여지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정보접근성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동독 주민은 서독 방송 수신·청취가 가능해 내부 변화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북한주민은 한국방송을 수신·청취할 수 없고, 북한당국은 '사회통제 3대 악법(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해 한류(韓流) 유입을 차단하면서 북한 내부 변화의 싹을 잘라내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서독의 동방정책이 독일통일로 이어진 내용을 거울 삼아 기존의 대북정책을 수정·보완해 통일한국을 이루는 것이다. 바로 동방정책이 동독의 지속적 변화를 추동한 것처럼 북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 대북정책의 틀을 재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통일부는 명칭 변경의 외양 차용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동방정책의 핵심 내용과 수단을 차용해야 한다. 그래야 민족의 헌법적 도덕적 책무를 완수할 길을 찾을 수 있다.

그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대북정책의 기조변화와 원칙의 정립이 절실하다. 우선 정책기조는 교류·협력에 방점을 둔 분단관리정책에 머물 것이 아니라 통일에 방점을 둔 통일지향정책으로 기조가 전환돼야 한다.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으로 분단의 안정적 관리와 북한 변화를 추동하고, 확장정책(enlargement policy)으로 자유, 시장,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북한에 확산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민주(자유)화와 시장화의 토대가 되고 종국적으로 자유통일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통일지향 대북정책의 추진 원칙은 북한의 정상화를 유도하고 통일기반의 제도적 토대를 정착·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원칙은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접근성의 강화, 인도적 대북지원의 제도화와 투명성 강화로 북한주민의 마음 얻기, 효과적 관여정책 개발로 북한의 개혁·개방 유도, 경제교류·협력의 상호 호혜주의의 견지와 불가역적 제도화 구축, 국제사회와의 협조·공조를 통한 정책효과 제고, 북한 급변사태에 철저한 대비 등이다. 이런 기조와 원칙이 북한주민을 압제에서 구원하고 자유통일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방도다. 정부의 전향적 자세 변화를 기대해 본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전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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