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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자본주의로 인해 대주주가 없이 전문경영인이 지배하는 순수한 전문경영기업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펀드자본주의 이전에는 전문경영인이 개인이나 가족의 지시를 따랐다면, 펀드자본주의부터는 전문경영인이 펀드의 지시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펀드자본주의와 그 이전을 나누는 것은, 전문경영체제인지 소유경영체제인지의 여부가 아니고, 전문경영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개인인지 펀드인지의 여부가 된다.
펀드자본주의가 기업경영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따라서 카리스마와 기업가정신을 소유한 개인이 경영을 주도하던 시대에서 안정성과 단기수익에 치우친 펀드가 경영을 주도하는 시대로 변천하면서 일어날 일을 상상하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더 이상 대기업집단체제, 자회사 간 핵심자산 이전, 새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위험한 장기투자 등은 없어질 것이다. 대신 독립기업체제, 기존 자산의 효율적인 운영, 위험이 낮은 확장투자가 주를 이룰 것이다. 펀드는 펀드가입자에게 이자율보다 높으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안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펀드자본주의는 경영효율성과 밸류업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업가정신을 부추기지는 못한다. 미국에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면서 모바일, 메타버스, 전기자동차, AI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개척한 기업은 모두 개인 대주주가 직접 경영을 하는 소유경영기업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기업가정신은 소유와 경영의 일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메타, 알파벳, 엔비디아, 아마존, 팔란티어 등 현재 신산업을 개척하고 있는 기업은 창업자가 개인 대주주로서 막강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이고 펀드가 오히려 이들의 눈치는 보고 있다. 한때 모바일을 주도했던 애플이 개인 대주주가 없어지고 펀드가 대주주가 되면서 AI라는 신산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은, 기업가정신이 발휘되는 데 개인 대주주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펀드 중에서도 사모펀드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공모펀드는 장기투자가 가능한 반면, 사모펀드는 5~7년 정도에 청산을 해서 펀드 가입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 펀드 가입자는 사적으로 모집했기 때문에 누군지 잘 모르고, 한국 기업의 기술이나 핵심자산을 가져가려는 해외 투자자일 수 있다. 공모펀드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해야 하는 사모펀드는, 핵심기술을 가지고 잘 경영하고 있는 기업도 공격해서 해외에서 더 높은 가격에 핵심자산을 매각하려는 동기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경영이 악화된 기업이나 사업구조조정을 하려는 기업에 들어가 도움을 주는 사모펀드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사모펀드의 제도적인 특성상 누가 고마운 존재인지 누가 자기들 가입자를 위해 사업보국의 정신을 훼손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인지 사전에 가리기는 쉽지 않다.
펀드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기업경영과 국가경제에 적지 않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금산법과 동일인제도에 저촉받지 않고 근로자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사모펀드는, 특히 상법개정과 맞물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의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 펀드가 앞으로 한국경제의 기업가정신을 퇴색시킬지, 한국기업의 사업보국 정신을 계승할지는 국민의 선택과 이에 따른 제도의 보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원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강원 세종대 경영대 교수는...
연세대 경영대 졸업. 미국 듀크대 경영학 석사. 프랑스 파리10대학 경영학 박사. 박사학위 취득 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으로 근무. 현재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재무관리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파견. 주요 연구 분야는 기업재무와 지배구조. 다수의 논문과 'Ross의 핵심재무관리(맥그로힐)', '재린이 재무관리(교문사)', The Changing Face of Korean Management (Routledge) 등 다수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