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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관세 협상 ‘상수’된 농산물… 농업계 “식량주권 절대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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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정영록 기자

승인 : 2025. 07. 28. 15:26

대통령실, 협상 품목 포함 '공식 인정'
농업단체들 28일 대통령실 앞 집회 개시
30개월 이상 牛, 향후 고급육 시장 경쟁
전문가 "확실한 보상대책 우선 마련해야"
농식품부 "농업 민감성 반영… 신중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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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가운데)과 관계자들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미 상호관세 협상에서 농축산물 장벽철폐를 반대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상호관세 막판 협상에서 '농산물 시장 확대'가 우리 정부 전략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시장 개방이 이뤄진다면 정부가 농업계에 관련 손실분을 전향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8일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생산자단체에 따르면 이날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파출소 앞에서 농축산물 개방 반대 및 식량주권 사수 등을 주장하는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농민단체장들은 "미국산 농축산물은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전면개방을 한 상황"이라며 "관세가 추가로 인하되고 비관세장벽까지 철폐된다면 농민 생존권 말살과 함께 국내 농업생산기반 붕괴는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미국이 다음달부터 우리나라에 '상호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만큼 남은 기간 관세율 조정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31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과 미국에서 1대 1 통상협의를 최종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대미 협상을 둘러싸고 우리 정부가 자동차·반도체·철강 등 주요 품목에 대한 수출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산물 개방을 대안으로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속 제기돼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쌀 수입 규제 등을 '비관세장벽'이라며 지적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 요구에 따라 우리나라가 쌀·소고기·사과 등 품목에 대한 시장 개방을 검토할 수 있다는 풍문(風聞)이 나돌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같은 협상방향이 가시화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25일 긴급 통상대책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협상 품목에 농산물이 포함돼 있음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농산물 개방을 협상 안건으로 공식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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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농업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농축산물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를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일각에서는 국산 농산물과 외국산 농산물은 소비 시장이 구분돼 있기 때문에 우리 농업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농업계는 시방 개방에 따른 파급효과가 국내 농업 분야 산업 확장성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사과는 수입산이 들어온 전례가 없다. 미국산 체리처럼 여름철 수박·참외 등 국산 과일 소비를 대체하는 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장 구분 논리로 접근하기 어렵다"며 "쌀도 마찬가지다. 수입산 쌀은 가공용으로 들어가 밥쌀 시장과는 별개라고 하지만 이는 국산 쌀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가 줄어드는 것과 같다. 결국 소비촉진 및 산업 확장성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고기의 경우 수입 가능 월령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 쟁점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30개월령 미만' 소고기만 미국에서 수입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이른바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국민 불안 심리가 극심했던 당시 양국이 마련한 합의점이다.

이번 협상에서 월령 제한이 없어진다면 장기적으로 한우 소비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생산자 측에서 나온다. 통상 30개월령 전후로 출하하는 한우처럼 마블링이 잘 만들어진 '미국산 와규' 등 고급육이 국내에 유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광우병 위험이 있는,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저급 소고기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또한 미국에서도 30개월령 이상 키우는 고급 소고기가 있을 수 있다. 당장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향후 미국산 와규 등이 한우와 직접 경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정부가 농업 시장 개방을 미국에 내어줄 경우 관련 손실분에 대한 확실한 구제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한·미 협상에 있어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구도가 나타나고 있다"며 "농민들이 요구하는 직불금 확충, 생산비 보장 등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어느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아무 공개된 정보 없이 정부가 (협상 이후) 나중에 설명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한 결정으로 갈 수 있다"고 짚었다.

[포토]대화하는 송미령 장관과 이형일 차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이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재명 정부 첫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이형일 기획재정부 차관과 대화를 하고 있다. /박성일 기자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 농업계가 새 정부에 실망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내다 봤다.

임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 되는데 농업인 땀과 눈물이 있었다고 발언하면서 농업계가 (농정 전환 등)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올랐었다"며 "농업은 이미 FTA로 많이 개방됐고 관세율도 낮다. 추가 시장 개방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검역은 룰대로 해야 하는 비관세조치인 동시에 국가 주권의 문제"라며 "협상을 통해 (미국산 농산물) 개방을 하고자 한다면 확실하고 종합적인 (피해구제) 대책을 마련한 뒤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농업계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 측 요구사항 등 협상이 진행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며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정영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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