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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괜찮아” 청춘의 모험, 다시 길을 나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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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8. 03. 15:31

연극 ‘청춘판타지’
마법과 몬스터의 세계, 그러나 현실의 감정이 중심이 되는 무대
판타지 장르를 빌려 청춘의 실패와 회복을 조용히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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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청춘판타지'의 여섯 주역들. 각기 다른 개성과 에너지로 판타지 세계 속 청춘의 얼굴을 그려낸다." (上) 왼쪽부터 정채연, 이현섭, 한현진, (下) 왼쪽부터 양은정, 임윤상, 신지은. / 사진 극단 신인류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오는 6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극장동국에서 공연되는 연극 '청춘판타지'는 마법과 몬스터가 실재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삼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의 내면에 놓인다. 판타지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무대 위에 펼쳐질 이야기는 동화적인 서사가 아니라, 다분히 현실적인 고민들을 품고 있는 이들의 여정일 가능성이 짙다. 이름만 전사, 마법사, 탐색가, 치유사일 뿐, 이들은 '자격증 갱신', '실업', '감정 표현의 서투름' 같은 문제 앞에 선 청춘들이다.

작·연출을 맡은 이준성은 롤플레잉 게임(RPG)의 구조와 어휘를 차용해 동시대 청년들의 내면 풍경을 비유적으로 풀어간다. 작품은 게임 속 세계처럼,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인물들이 팀을 이루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들은 캐릭터라기보다, 각기 다른 결핍과 불안을 안은 인물들로 보인다.

이야기는 모험가 자격 갱신을 앞둔 전사가 마법사, 탐색가와 함께 한 사건을 조사하는 임무에 나서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임무는 예상과 달리 실패로 돌아가고, 함께하던 팀, 즉 '파티'는 흩어진다. 길을 잃은 전사는 방황 끝에 과거에 도움을 받았던 인물을 다시 만나고, 한 신흥 종교 집단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치유사, 탐색가, 은인과 다시 파티를 꾸려 여정을 이어가지만, 새로운 시작은 그리 순조롭지 않다.

과정 중 마법사는 스스로의 능력을 잃고 이탈하게 되고, 파티는 '그리핀의 둥지'라 불리는 위험한 장소에 도달한다. 전사는 생사의 경계에 놓이지만, 그 순간 예기치 않게 나타난 전설의 용사에게 구조된다. 그런데 그 용사가 인간이 아닌 엘프라는 사실은 전사에게 새로운 혼란을 안겨준다. 이상과 현실,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서 전사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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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신인류
이 여정 속에서 작품은 거대한 적과의 전투보다는, 실패와 방황을 겪은 이들이 다시 함께 걷기 시작하는 순간에 더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조심스레 비춰 보인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은 선언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깝고, 그 질문은 무대 위 모험가들의 선택을 통해 관객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이번 무대는 복잡한 장치를 덜어낸 단순한 구조를 바탕으로, 조명과 움직임, 오브제를 활용해 판타지적 상상력을 환기시킨다. 강렬한 단색 조명 아래 인물들의 움직임과 배우의 실루엣, 서로 엇갈린 시선들이 어우러지며 모험과 갈등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명암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장면, 무대 한가운데 고요히 서 있는 엘프적 존재의 모습은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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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신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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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극단 신인류
이번 공연에는 다양한 개성과 결을 지닌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먼데이 PM5', '타이피스트' 등에서 감각적이고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 정채연은, 이번 작품에서도 균형 잡힌 무대 감각으로 이야기의 결을 매만질 것으로 기대된다. '더 인간적인 말', '인류의 희망', '인간아, 인간아' 등을 통해 일상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건드려온 양은정, '100번째 리뷰', '폭풍우 치는 밤에', '살고싶어 죽겠어요' 등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한현진, '그래서 죽을거야'에 출연해 단단한 인상을 남긴 신지은도 이번 무대에 오른다. 여기에 이현섭, 임윤상이 가세해 무대의 밀도를 더할 예정이다.

극단 신인류가 제작하고 서신우 프로듀서가 기획을 맡은 이번 공연은, 움직임 디렉터 양은숙, 조명 김광훈, 음악 및 그래픽 YAGI, 의상 자문 조준호, 사진 최기홍 등 다수의 제작진이 참여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청춘판타지'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을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한때는 꿈이었고, 지금은 생존의 언어가 되어버린 '청춘'이라는 시간을 이 무대는 판타지의 형태로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놓인 이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언제든 다시, 모험을 시작할 수 있어."

연극 '청춘판타지'는 그 말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여섯 명의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실패'는 정말 끝일까? 아직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질문 앞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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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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