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과 몬스터의 세계, 그러나 현실의 감정이 중심이 되는 무대
판타지 장르를 빌려 청춘의 실패와 회복을 조용히 그려내다
|
작·연출을 맡은 이준성은 롤플레잉 게임(RPG)의 구조와 어휘를 차용해 동시대 청년들의 내면 풍경을 비유적으로 풀어간다. 작품은 게임 속 세계처럼,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인물들이 팀을 이루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들은 캐릭터라기보다, 각기 다른 결핍과 불안을 안은 인물들로 보인다.
이야기는 모험가 자격 갱신을 앞둔 전사가 마법사, 탐색가와 함께 한 사건을 조사하는 임무에 나서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임무는 예상과 달리 실패로 돌아가고, 함께하던 팀, 즉 '파티'는 흩어진다. 길을 잃은 전사는 방황 끝에 과거에 도움을 받았던 인물을 다시 만나고, 한 신흥 종교 집단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치유사, 탐색가, 은인과 다시 파티를 꾸려 여정을 이어가지만, 새로운 시작은 그리 순조롭지 않다.
과정 중 마법사는 스스로의 능력을 잃고 이탈하게 되고, 파티는 '그리핀의 둥지'라 불리는 위험한 장소에 도달한다. 전사는 생사의 경계에 놓이지만, 그 순간 예기치 않게 나타난 전설의 용사에게 구조된다. 그런데 그 용사가 인간이 아닌 엘프라는 사실은 전사에게 새로운 혼란을 안겨준다. 이상과 현실,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서 전사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
이번 무대는 복잡한 장치를 덜어낸 단순한 구조를 바탕으로, 조명과 움직임, 오브제를 활용해 판타지적 상상력을 환기시킨다. 강렬한 단색 조명 아래 인물들의 움직임과 배우의 실루엣, 서로 엇갈린 시선들이 어우러지며 모험과 갈등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명암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장면, 무대 한가운데 고요히 서 있는 엘프적 존재의 모습은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
|
극단 신인류가 제작하고 서신우 프로듀서가 기획을 맡은 이번 공연은, 움직임 디렉터 양은숙, 조명 김광훈, 음악 및 그래픽 YAGI, 의상 자문 조준호, 사진 최기홍 등 다수의 제작진이 참여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청춘판타지'는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을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한때는 꿈이었고, 지금은 생존의 언어가 되어버린 '청춘'이라는 시간을 이 무대는 판타지의 형태로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놓인 이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언제든 다시, 모험을 시작할 수 있어."
연극 '청춘판타지'는 그 말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여섯 명의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실패'는 정말 끝일까? 아직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질문 앞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