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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8. 05. 16:42

연극 ‘서울의 별’
이문식·정은표·하지영 등 세대와 결이 다른 캐스트
평범한 이웃의 얼굴로 무대에
화려함의 이면, 잊힌 일상의 조각들 속에서 다시 떠오른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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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서울, 그 이름 속에는 늘 이중성이 깃들어 있다. 높이 솟은 빌딩 숲과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거리, 동시에 그 그림자 아래 놓인 오래된 골목과 옥탑방. 연극 '서울의 별'은 이 도시의 가장 꼭대기이자 동시에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는 8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대학로 아트하우스에서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무심히 지나쳤던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피어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비춘다.

극은 서울의 낡은 다세대 주택 옥탑방을 배경으로 한다. 마치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작은 섬처럼 존재하는 이곳에는 세 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이유로 자리를 틀고 살아간다. 열쇠수리공으로 살아가는 괴짜 노인 김만수, 한탕의 인생을 꿈꾸며 실패를 반복하는 청년 문호, 그리고 무명가수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미령. 처음엔 서로를 경계하고 배척하지만, 점차 각자의 상처를 발견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나아간다.

'서울의 별'은 이 인물들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따뜻하게 펼쳐 보인다. 도시에서는 공감, 이해, 존중처럼 자주 잊히기 쉬운 가치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서사가 무대 위에 조용히 쌓여간다. 거창한 사건보다는 일상 속 부딪힘과 작은 화해를 중심으로 흐르는 이 연극은, 각자가 삶 속에서 잃어버린, 별처럼 작지만 분명히 빛났던 감정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관객과 함께 그려간다.

연출은 손남목이 맡았다. 연극 '보잉보잉', '스캔들', 뮤지컬 '지저스' 등을 통해 익숙한 일상의 결을 유쾌하면서도 절제된 정서로 풀어내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현실의 틈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감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제작진은 "'서울의 별'이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소외된 이들을 조명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온기를 무대 위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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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서울의 별' 연습 현장 / 사진 극단 두레
배우진 역시 극의 감정과 정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축이다.

김만수 역에는 이문식, 정은표, 김명수가 트리플 캐스팅되었다. 이문식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생활감 있는 연기로 사랑받아온 배우로, 무뚝뚝하면서도 인간적인 만수의 내면을 유머와 여백으로 풀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정은표는 특유의 따뜻한 이미지와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김만수의 회한과 정서를 조용한 호흡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배우다. 김명수는 중후한 무대 존재감과 더불어, 캐릭터의 고집과 존엄을 묵직하게 담아낼 수 있는 연기력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 세 배우가 각기 다른 결로 그려낼 김만수는 관객에게 극 중 중심 인물 이상의 감정적 축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문호 역은 박준석(태사자), 유희재(세븐어스), 이동규, 정지환이 맡았다. 문호는 한탕주의와 좌절 사이에서 부유하는 청년이다. 표면적으로는 철없고 무책임하지만, 그 안에는 실패에 익숙해진 세대의 허무와 인간적인 외로움이 배어 있다. 박준석과 유희재는 아이돌 출신 배우로,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감정 리듬을 꾸준히 다져온 이들이다. 감정의 날카로운 진폭을 무대 위에 투명하게 드러내는 정지환과, 안정된 호흡으로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조율할 줄 아는 이동규는 또 다른 색채의 문호를 완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네 배우가 만들어낼 다양한 문호는, '젊음'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복잡한 감정의 지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조미령 역에는 하지영, 배우희(달샤벳), 안예인(멜로디데이)이 나선다. 조미령은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무명가수로 살아가는 인물로, "좋은 여자가 못 된다"는 대사로 응축되는 그녀의 감정에는 자기방어와 체념,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이 뒤섞여 있다. 하지영은 연극, 방송, 공연 MC를 오가며 쌓아온 입체적인 활동 이력을 바탕으로, 미령의 복합적인 내면을 섬세하고도 현실감 있게 구축할 수 있는 배우다. 배우희는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과 안정된 감정 전달력으로, 조미령이라는 인물의 정서를 또 다른 결로 풀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안예인은 방송 활동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성우 안지환·정미연 부부의 자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연극 무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으며 배우로서의 자리를 차근차근 넓혀가고 있다. 세 명의 조미령은 각기 다른 감정의 결을 통해, 삶을 버텨내는 여성의 강단과 유약함을 동시에 조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연, 주희중, 이열, 노승민은 극 중 멀티역을 맡아 조폭의 똘마니, 문호의 친구, M.C 등 다양한 인물들을 오간다. 이들은 단순한 장면 전환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면과 군상들을 구현해내는 장치로 기능하며 극의 리듬과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캐릭터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를 담당하는 이들이 만들어낼 에너지는, 극 전체의 호흡과 밀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다.

이처럼 다양한 배역에 걸쳐 서로 다른 감정의 결을 지닌 배우들이 포진해 있는 만큼, 관객이 어떤 캐스트로 공연을 마주하느냐에 따라 극의 분위기와 감정선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 한 번의 관람만으로는 모두 담기 어려운 이 입체성과 변화의 결은, 이 작품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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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서울의 별' 연습 현장 / 사진 극단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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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서울의 별' 연습 현장 / 사진 극단 두레
'서울의 별'은 대학로의 대표적인 제작사 세 곳이 협업한 첫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사랑해 엄마'의 죠이컬쳐스, '임대아파트'의 안녕컴퍼니, '보잉보잉'의 극단 두레가 손을 맞잡으며, 각기 다른 제작 감각을 하나의 무대로 통합해냈다. 단순한 공동 제작을 넘어, 협업 자체가 지닌 창작적 실험으로서의 의미를 내포한다.

작품의 제목인 '서울의 별'은 상징적으로 읽힌다. 이 연극이 조명하는 인물들은 대단한 업적이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군가의 곁에 머물며, 그 존재만으로도 작지만 또렷한 빛을 발하는 이들이다. 도시의 외곽에서 살아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별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이 연극은 그런 사람들의 자리를 무대 위에 차분히 마련한다. 그리고 익숙한 일상의 조각들을 정직한 시선으로 붙잡으려는 태도는, 감정의 결이 과장되지 않은 인물들을 통해 오히려 더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무언가를 건넨다.

'서울의 별'이 그려내는 세계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스쳐 지나온 풍경이거나, 지금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모습과 겹쳐질지도 모른다. 관객은 각자의 자리에서 작게나마 웃고, 조용히 돌아보며, 마음속 어딘가를 따뜻하게 덮는 별 하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도시의 끝자락, 말없이 빛나는 작은 별들. 이 연극은 그 별들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그 별이었던 순간에 대한 조용한 헌사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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