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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확장, 캐릭터와 이야기로 세계를 설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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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

승인 : 2025. 08. 12. 14:44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실존 넘어선 서사형 콘텐츠
'골든' 빌보드 1위가 보여준 새로운 팬덤 전략의 전환점
케이팝데몬헌터스
케이팝데몬헌터스/넷플릭스
K-팝이 음악을 벗어나 이야기로 아티스트를 지나 캐릭터로 확장되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Golden)은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1일(현지시간) 빌보드는 예고 기사를 통해 '골든'이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K-팝 관련 곡으로는 통산 아홉 번째이자 여성 보컬 중심의 K-팝 곡으로는 최초다. 특히 이 곡을 부른 주체가 실존 아티스트가 아닌 극 중 가상의 걸그룹 헌트릭스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실재하지 않는 캐릭터가 핫100 정상을 차지한 것은 2022년 디즈니 '엔칸토' OST '위 돈트 토크 어바웃 브루노' 이후 두 번째다.

여성 멤버가 3인 이상인 그룹이 핫100 정상에 오른 것도 2001년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 24년 만이다. '골든'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세계 양대 대중음악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다.

빌보드는 "K-팝이 장르의 경계를 벗어나 서사와 캐릭터·감정이 결합된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단순한 음원 성과를 벗어나 콘텐츠 설계 방식의 변화가 드러났다는 의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음악·캐릭터·세계관이 유기적으로 엮인 서사형 K-팝 콘텐츠다. 주인공들은 글로벌 K-팝 스타이자 악을 물리치는 헌터로 설정돼 있다. 이들이 부른 '골든'은 캐릭터의 욕망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테마곡으로, 뮤지컬의 전통적인 '아이 원트 송(I Want Song)' 구조를 참고해 설계됐다. 곡의 구조·메시지·퍼포먼스가 모두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케이팝데몬헌터스
케이팝데몬헌터스/넷플릭스
이러한 방식은 음악 감상의 틀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K-팝이 실존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했다면 이제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통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음악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닌 서사를 탐험하는 입구가 된다.

한 가요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음악 하나만으로는 세계를 설득할 수 없다. 팬들이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정서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K-팝은 IP 중심 경쟁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이 구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공개 직후 93개국 넷플릭스 톱10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했고 SNS에서는 댄스 챌린지·코스프레·팬아트 등 다양한 2차 콘텐츠가 자발적으로 생성됐다. 단순한 스트리밍을 넘어 팬 문화로 확장되며 콘텐츠 소비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업계는 이번 성공을 단발적 현상이 아닌 산업 구조 변화의 신호로 본다. 과거에는 아티스트 중심으로 음악과 퍼포먼스를 기획했으나 이제는 캐릭터 기반의 IP가 먼저 설계되고 그 위에 음악이 더해지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다. AI 보컬·버추얼 휴먼 등 가상 아티스트 제작 환경도 이미 정착 단계다. 실존하지 않는 캐릭터가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K-팝이 IP 중심 경쟁 체제로 접어들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장르와 매체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일수록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이 일회성 사례가 아닌 K-팝이 IP 중심 서사형 콘텐츠로 확장되는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음악·비주얼·서사를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각 매체의 강점과 산업적 파급력을 고려해 스토리텔링 방식을 선택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스토리 기반 K-팝 콘텐츠가 단기 유행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팬덤과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가 맞물리면서 장기적인 산업 구조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팬들이 곡 자체보다 세계관과 캐릭터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되는 구조는 향후 K-팝이 영화·게임·패션 등 다른 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기반이 될 수 있다"면서 "지속성을 가지려면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가고 채널별로 어떤 방식으로 확장할지에 대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K-팝의 확장 가능성은 기술이 아닌 설계력에 달려 있다. 이야기와 감정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획력이 곡 하나의 흥행보다 더 중요한 시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세계를 설득할 수 있는지를 입증한 첫 번째 전환점이된 셈이다.

박송아 대중문화 평론가는 "앨범·애니메이션·웹툰·VR 공연 등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될 때 팬은 소비자가 아닌 세계 속의 주인공이 된다. 장르 융합과 팬 참여 구조가 결합되면 팬덤은 공동 창작자로 진화하고 충성도는 높아진다"면서 "K-팝이 무대를 넘어 IP 산업으로 진화하는 지금 음악은 더 이상 단발성 콘텐츠가 아니라 세계를 설계하고 확장하는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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