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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가족, ‘비밀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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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5. 09. 10. 08:18

사랑해서 오히려 조심스럽고 불편할 수 있는 관계 해부
과감하게 커밍아웃 나서는 엄마 역 장영남 호연 돋보여
'기생충' 작가 출신 김대환 감독 작품…12세 이상 관람가
비밀일 수밖에
10일 개봉한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남보다 가까우면서도 오히려 먼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묻고 소통 회복의 가능 여부를 타진한다./제공=슈아픽처스·AD406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강원 춘천에서 고교 미술교사로 살아가는 '정하'(장영남)에게 캐나다 유학생인 아들 '진우'(류경수)와 그의 여자친구 '제니'(스테파니 리)가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고 이제는 순둥이 청년이 된 '진우'가 '제니'와 결혼하겠다고 통보하자 '정하'는 당황해 하는데, 때 마침 '정하'의 절친한 후배를 자처하는 '지선'(옥지영)까지 나타나자 집 안 분위기는 더욱 이상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캐나다에 있어야 할 '제니'의 부모까지 춘천을 찾아 '정하'의 집에 머무르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각자의 비밀들로 인해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금씩 다가온다.

살다 보면 가족이 남보다 오히려 멀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를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조심스러운 감정 탓이다. 생면부지의 남한테는 거침없이 털어놓는 속내를 가족을 상대로는 감추기 위해 애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10일 개봉한 '비밀일 수밖에'는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란 오랜 울타리의 허상 혹은 환상을 조곤조곤 해부한다.

비밀일 수밖에
영화 '비밀일 수밖에'에서 주인공 '정하'(장영남·오른쪽)는 '지선(옥지영)과 동성 연인 사이란 걸 아들 '진우'(류경수)에게 뒤늦게 털어놓는다./제공=슈아픽처스·AD406
극중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뒤늦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아들에게 커밍아웃하는 '정하'는 그동안의 한국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논쟁적 캐릭터다. 앞선 여러 작품에서 자식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부모는 여럿 있었지만, 자식에게 본인의 동성애 성향을 자연스럽게 털어놓는 부모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례가 드물어 낯설게만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에 의외의 생기를 불어넣는 주인공은 장영남이다. 일상적이면서도 때로는 긴장과 두려움, 단호함이 혼재된 눈빛과 몸짓으로 극의 완급을 조절하며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장영남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장영남을 포함한 출연진 대부분의 호연이 인상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제니' 역의 스테파니 리와 '제니' 모친 역의 박지아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모델 출신 스테파니 리는 몇 년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꾸밈없는 연기로 쉼표를 찍고, 연극 무대 출신 박지아는 이민 가정의 억척스러운 엄마로 변신해 웃음과 활기를 더한다.

김대환 감독이 연출 지휘봉을 잡았다. 앞서 데뷔작 '철원기행'으로 지난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 상을, 두 번째 작품 '초행'으로 2017년 제70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현재의 감독' 부문 감독상을 차례로 받은 뒤 '기생충'의 윤색 작업에 참여했다. 올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미리 공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12세 이상 관람가.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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