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라 뱅크스 권유로 16세때 모델 데뷔…성공 가도 쾌속 질주 스스로 만족 못하는 연기력에 자존감 하락…활동 중단후 칩거 저예산 영화들로 복귀…"수입 크게 줄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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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밀일 수밖에'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 재개를 알린 재미동포 모델 출신 배우 스테파니 리가 고혹적인 미모를 뽐내고 있다./제공=키이스트
세계적인 슈퍼모델 타이라 뱅크스의 눈에 띄어 모델이 된 재미동포 소녀는 모국인 한국에서 큰 어려움 없이 연기에 입문했다. 외꺼풀의 해맑은 미소와 찰진 영어 발음으로 다섯 글자의 한 스킨케어 브랜드를 외치는 CF속 모습이 대중을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여기에 177㎝의 서구적인 체형까지 겸비했다는 걸 확인한 드라마 관계자들이 경쟁적으로 캐스팅에 뛰어들었다. 2014년 데뷔작인 '선암여고 탐정단'부터 2020년 '스타트업'까지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의 홍보를 위해 지난 3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한 카페에 취재진과 만난 스테파니 리는 "부족한 내 연기를 보면서 갈수록 화가 나고 지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번아웃 증상이었다"며 "열 여섯 살 때 멋 모르고 뛰어들어 휴일도 없이 일했던 모델 시절보다 만족도와 자존감 모두 낮아지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을 중단하고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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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리(오른쪽)는 영화 '비밀일 수밖에'에서 의사란 안정된 직업 대신 남자친구 '진우'(류경수)와의 결혼을 선택하는 캐나다 동포 '제니' 역을 연기했다./제공=슈아픽처스·AD406
쉬는 동안 간간이 출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물리치고,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휴식에만 집중했다. 지쳤던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느껴지자, 연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모든 작품을 내키는대로 고를 수 있는 처지는 여전히 아니었지만, 그래도 앞으론 규모와 배역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마음이 끌리는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그때 '비밀일 수밖에 '를 만났다.
지난 10일 개봉한 '비밀일 수밖에'는 데뷔작 '철원기행'으로 지난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 상을, 두 번째 작품 '초행'으로 2017년 제70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현재의 감독' 부문 감독상을 차례로 받은 뒤 '기생충'의 윤색 작업에 참여했던 김대환 감독의 연출작이다. 남편과 사별한 고교 미술교사 '정하'(장영남)의 집에 캐나다 유학생인 아들 '진우'(류경수)와 여자친구 '제니'(스테파니 리), '제니'의 부모 그리고 '정하'의 후배 '지선'(옥지영)이 예고없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극중 '제니'와 저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알고보면 보수적인 삶을 사는 해외 교포란 점이 우선 똑같아요. 부모의 뜻에 따라 의대를 졸업한 '제니'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저 역시 한때 약대 진학을 권유받기도 했거든요. 또 영화속 배경인 춘천은 제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잠시 살았던 적이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므로 출연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한달 남짓한 촬영 기간 동안 배우들끼리의 케미스트리가 너무 좋아, 막판에는 촬영이 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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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리는 "보다 넓은 무대에서의 활동을 목표로 해외 작품의 오디션도 수시로 보고 있다"고 귀띔하며 활짝 미소지었다./제공=슈아픽처스·AD406
지난 7월 개봉한 전작 '구마수녀 - 들어붙었구나'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저예산 영화에 내리 출연하는 등 돈을 좇지 않다보니, 활동 중단 이전에 비해 수입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연기에 배고픈 지금이 훨씬 행복해서다. 스테파니 리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해외 작품의 오디션도 수시로 보고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한국어는 물론 영어로도 연기해보고 싶다"면서 "활동 무대가 어디든, 흥행에 성공하든 안 하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에 계속 출연하는 것이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