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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평생 연금·고급 SUV’에 분노한 동티모르 청년들…의회는 결국 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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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09. 18. 09:23

TIMOR-POLITICS/PROTESTS <YONHAP NO-4829> (REUTERS)
17일(현지시간) 동티모르 딜리 국회의사당 밖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종신연금과 새 차량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대학생들이 동티모르 국기와 현수막을 들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동남아시아 최빈국 동티모르에서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주도한 '반(反)특권 시위'가 의회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며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18일(현지시간)로이터·AFP에 따르면 동티모르 의회와 정부는 국회의원 전원에게 고급 SUV를 지급하려던 계획과 전직 의원에게 평생 연금을 보장하는 법안을 모두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사흘간 수도 딜리를 뜨겁게 달군 격렬한 시위 끝에 당국이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것은 의회가 작년 예산안에 포함시킨 두 가지 특권 조항이었다. 첫 번째는 65명의 국회의원 전원에게 1인당 1대씩, 총 420만 달러(약 58억 원) 규모의 도요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신차를 지급하는 계획이었다. 두 번째는 2006년에 제정된 법률에 따라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현직 시절 월급에 해당하는 연금을 평생 지급하는 조항이었다.

의회의 이 같은 '특권'은 세계은행 기준 국민의 40%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가고 고질적인 영양실조와 실업 문제에 시달리는 동티모르의 현실엔 지나치게 과한 특권이란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 40%가 빈곤에 허덕이는데 정치 엘리트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는 것이다. 카에타노 코레이아 평화대학 경제학부 학장은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공직자, 특히 국회의원들이 일반 국민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불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고 짚었다.

결국 동티모르에선 지난 15일부터 분노한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수도 딜리의 의회 의사당 앞으로 모여들었다. 시위는 사흘 내내 이어졌고 일부 시위대는 타이어를 태우고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시위대는 정부의 약속을 쉽게 믿지 않았다. 의회가 차량 구매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한 뒤에도 한 시위자는 AFP 통신에 "자동차들이 이미 항구로 오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며 "내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하며 불신을 드러냈다.

결국 거센 압박에 밀린 의회는 16일 차량 구매 계획을 만장일치로 철회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다음 날인 17일에는 시위대 대표들과의 면담 끝에 '평생 연금' 법안까지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위대 대표인 크리스토바오 마토(27)는 "만약 의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시위를 조직할 것"이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다.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인구 130만 명의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는, 고질적인 불평등과 영양실조, 실업 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경제는 고갈되어가는 석유와 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네팔 등 아시아국가들에선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등의 특권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달 말 국회의원들의 주택 수당 등 특혜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격화하며 10명이 숨지고 20명이 실종됐다. 네팔에서도 지난 8~9일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72명이 숨지고 2113명이 다쳤다. 네팔은 행정부 수반인 총리가 사퇴하고 임시 총리가 취임해 조기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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