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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국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게양을 지시했고, J.D. 밴스 부통령은 예를 갖춰 에어포스2로 고인의 시신을 직접 운구했다.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은 병사들 앞에서 그를 '진정한 영웅'이라 추모했다. 시민들은 '고마워 찰리'라고 적힌 피켓과 촛불을 들고 추모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폭스뉴스와 CNN 등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언론이 충격적인 암살 사건을 보도했다.
커크가 펼쳐온 운동은 단순한 정치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정신과 자유, 가정의 가치, 즉 미국의 정신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그는 대학 캠퍼스에 들어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고 논리로 설득했다. 진영을 넘어선 소통을 시도했다. 그런 그의 철학과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커크의 죽음이 전해진 지 이틀이 지난 후 그의 아내 에리카 커크가 카메라 앞에 섰다. 남편이 진행했던 팟캐스트 방송 스튜디오에서 "내 남편이 애국심과 신앙,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전했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그를 죽였다"고 말했다. 그는 "내 남편의 사명은 이제 더 강력해졌다"며 "이 미망인의 울음은 전 세계를 울릴 것이며 그의 운동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에리카는 남편이 이끌어온 '터닝 포인트 USA' 운동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절망 위에 다시 사명의 깃발을 세웠다.
커크는 13년 전 '터닝 포인트 USA'를 시작할 당시 이 운동이 오직 미국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최근 '빌드업 코리아 2025' 연설에서는 "자유를 지키는 이 운동은 한국과 전 세계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며 용기를 북돋웠다. 그리고 많은 역사적인 고난을 극복한 대한민국이 낮은 혼인율과 출산율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며 청년들에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많이 낳아 한국의 번영을 이어가라고 조언했다. 자녀가 없이는 미래가 없다며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한국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간 커크에게 일부 한국 언론은 '극우'라는 낙인을 찍었다. 용납할 수 없는 표현이다. 인간의 죽음 앞에서 정치적 진영 논리에 기반한 평가는 멈춰야 한다. 비판이나 진영 다툼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다.
커크에 대한 왜곡 보도에 결국 미국이 직접 나섰다.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은 자신의 SNS를 통해 "찰리의 죽음과 관련해 폭력과 증오를 미화하는 외국인은 미국에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영사관에 관련 조치를 지시했고, 왜곡된 정보의 전파 사례를 제보해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그제야 일부 언론이 커크를 지칭한 '극우'를 '보수'로 수정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커크의 암살을 축하한 외국인들에 대해 비자 발급을 거부하거나 이미 나온 비자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 와서 정치적 인물의 살해, 처형, 암살을 축하하는 자들에게 비자를 줘서는 안 된다"며 "이미 입국했다면 비자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지켜야 했다. 우리는 에리카의 눈물 어린 연설을 봤다. 세 살배기 딸이 "아빠는 어디 있나"고 묻자 에리카는 "아빠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에게 블루베리를 사주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워킹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이 장면을 봤다면 커크에게 '극우'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나라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부름에 응답했던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커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태평양 건너의 나라 대한민국에 와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한국에 아직 남아 있는 희망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떠났다. 그의 아내 에리카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커크의 신념을 폄훼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그가 남긴 정신을 이어가는 것 아닐까. 그것이 자유를 위해 먼 타국에 발을 디뎠던 한 사람과 그 가족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