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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번 주에만 두 곳에서 8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정부가 제공한 무상급식을 먹고 구토와 복통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보도했다. 서자바주 가루트 지역에서는 5개 학교 학생 569명이, 중앙 술라웨시주 방가이 제도에서는 277명의 학생이 정부 제공 급식을 먹은 뒤 집단으로 식중독 증세를 보였다. 이는 프로그램 시작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올해 1월 정부의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식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진 아동이 누적 4000명을 넘어섰다. 아동들의 영양을 개선하겠단 취지를 내세운 프라보워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총제적 부실과 부패 논란에 대규모 집단 식중독이란 참사까지 이어졌다는 비판이다.
정부 대변인은 "바라거나 의도했던 바가 아닌 사건이 또 다시 벌어진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해당 지역의 급식을 중단하는 대신 빵·우유·계란 등 기본 식품으로 대체 공급하겠다고 밝혀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무상급식 공약은 8300만 명의 아동과 임산부 등에게 식사를 제공해 국가적 과제인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지역 소상공인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프로그램이 시작부터 잘못 설계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 영세 급식업체들을 배제한 비현실적인 사업자 선정 기준이다. 정부는 위생을 명분으로 스테인리스 주방 설비·에폭시 바닥·하루 최소 3500인분 이상 조리 가능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자카르타 외곽에서 20년간 케이터링 업체를 운영해 온 데위 씨는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 데 수억 루피아가 드는데, 우리 같은 영세업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결국 돈 있는 대기업들만 배 불리는 정책"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로 사업권을 따낸 곳은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재단이나 기관들로, 심지어 경찰과 군대가 직접 나서서 전국에 수백 개의 급식 조리 시설을 운영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당초의 약속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BBC 인도네시아는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9900억 원)가 넘는 막대한 무상급식 예산은 부패 관료들의 '금광'이 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반부패국은 이미 지난 3월 "부정부패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경고했고, 한 급식업체는 "2월부터 급식을 제공했지만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당국의 자금 횡령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막대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필수 예산이 희생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교육부 예산을 절반 가까이 삭감했고, 이로 인해 대학 장학금이 취소되는 등의 여파가 이어졌다. 이런 탓에 무상급식 프로그램은 지난달 말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당시 시위대는 "아이들은 공짜 밥, 부모는 해고"란 팻말을 들고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