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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기업] 친환경 외치며 폐수 콸콸… 현대오일뱅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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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 손승현 기자

승인 : 2025. 09. 21. 17:37

2019년 발암물질 품은 폐수 방출
사측은 공업용수로 재활용 주장
1심, 계획적인 '환경 범죄' 판결
역대 최대 과징금 1761억원 오명
임원들 대부분 보석 석방 후 복귀
HD현대오일뱅크 대산 공장. /제공=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오일뱅크가 충남 서산 대산공장에서 수십만톤의 폐수를 방출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1급 발암물질 '페놀'을 품은 독성 폐수였다. 매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통합보고서를 발간하며 '안전'과 '환경'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는 현대오일뱅크는 폐수 방출의 대가로 '1761억원' 역대 최대 과징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검찰에 따르면 2019년 10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대산공장에서 나온 폐수 33만톤은 현대오일뱅크의 자회사 HD현대OCI로 흘러 들어갔다. 2016년 10월부터 2021년 11월까지는 113만톤의 폐수가 또 다른 자회사인 HD현대케미칼로 넘어갔다. 모두 수질오염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처리됐다. 폐수는 가스세정 시설 굴뚝으로 증발시키는 방식으로도 불법 배출됐는데, 2017년 6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무려 130만톤에 이르는 오염수가 적법 절차 없이 대기 중으로 날아갔다. 현대오일뱅크는 이 같은 혐의로 1심에서 5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현대오일뱅크는 '공업용수 재활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공장 밖으로 배출한 것은 폐수가 아니라 공업용수고, 가뭄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수 처리하지 않고 불순물을 제거해 자회사에서 공업용수로 재활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과정에서 오염물질 배출 또한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같은 행위를 '비용 절감을 위한 편법'이라 판결했다. 회사 경영 차원에서 발생한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환경 범죄라는 것이다. 자회사로 폐수를 떠넘긴 데엔 폐수 처리 설비 증설에 필요한 450억원의 비용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실제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내부 문건이 존재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의 근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우인성 부장판사)는 지난 2월 "가뭄으로 인해 공업용수가 부족하게 되자 기존에 사용하던 깨끗한 물 대신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냉각수로 투입해 사용하게 했다"며 "가뭄이 해소된 이후에도 폐수를 투입해 연간 11억~15억의 용수공급 및 폐수처리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보고가 있었고, 실제 '연간 13억8000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2019년 초께 폐수처리량이 방지시설인 폐수처리장의 설계량을 초과하게 되고, 2020년께 예정된 RDS(증질유 탈황공정) 증설로 인해 폐수발생량의 증가가 예상돼 폐수처리장의 증설이 필요하게 되자 450억원 상당의 증설 비용을 절감하고 자회사의 공장 증설로 인한 부족한 용수 공급을 위해 이 사건 폐수를 방지시설에 유입해 처리하지 않고 자회사로 이동시켜 탈황탑에서 냉각수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더욱이 현대오일뱅크가 충청남도에 신고한 페놀 농도 측정치는 허위로 판명 났고, 이 허위 신고를 통해 방지시설 설치 의무 자체를 면제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재판부는 "내부고발자의 공익 신고가 없었다면 범행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주민들의 민원, 관할 행정 관청의 단속이 있을 때만 폐수 공급을 중단하고,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은폐해 왔다"고도 꼬집었다.

환경부도 '철퇴'를 내렸다. 지난 8월 환경부는 "장기간에 걸쳐 환경비용을 회피하며 국민 건강 및 안전을 위태롭게 한 중대한 사안"이라며 현대오일뱅크에 '1761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물렸다. 자진신고와 조사 협조는 일부 감경 요인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현대오일뱅크는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통해 연간 ESG 활동 성과 등을 공개하고 있다. 2024년 경영보고서엔 '회사의 활동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며, 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관련 정책을 보유 및 관리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법적 허용기준보다 강화된 자체관리기준을 적용해 대기오염물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ESG 경영과 친환경 사업을 지속적으로 외쳐왔지만 실제 사업 운영에서는 환경 리스크를 외부화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한 셈이다.

강달호 전 현대오일뱅크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전현직 임원들에게도 대부분 1년 이하의 형이 선고됐다. 역대 최대 과징금에 미치지 못하는 형량이다. 국내 굴지의 정유업체가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규제를 우회하며 저지른 환경 범죄에 대한 결과치고는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1심 이후 재판에 넘겨진 임원들은 대부분 보석 석방돼 보직에 복귀한 상태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본지에 "공업용수 재활용 과정에서 외부로의 오염물질 배출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항소심이 진행 중인 내용인 만큼 이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 지역사회의 불안과 오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채연 기자
손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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