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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홍수사업’ 비리에 필리핀 수만 명 분노…대규모 시위, 일부 폭력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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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09. 22. 12:45

Philippines Flood Control Corruption <YONHAP NO-6697> (AP)
21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반부패 집회에 참석한 한 시위자가 '국가를 위하여(For the Nation)'라는 구호를 들고 있다/AP 연합뉴스
필리핀을 뒤흔들고 있는 '홍수 예방 사업' 부패 스캔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결국 대규모 거리 시위로 폭발했다.

22일 AFP·AP 등에 따르면 전날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수십억 달러의 국민 세금이 허공으로 사라진 이번 사태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날 오전 마닐라의 리잘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는 시 당국 추산 약 5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오후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시니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중의 힘' 혁명의 역사적 장소인 EDSA 도로의 기념비 앞에 집결했다.

40년 전 바로 그 장소에서 독재에 맞서 싸웠다는 마누엘 델라 세르나(58) 씨는 "이것은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민들이 홍수로 고통받는 동안 그들은 전용기를 타고 대저택에 살면서 국민의 돈을 빼돌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대통령궁 인근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경찰이 차량으로 도로를 막자 일부 시위대가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약 70명 가량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의 폭력과 시위대 차단을 위해 사용하던 트레일러에 불이 붙은 두 사건으로 미성년자 20명을 포함, 총 7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은 '홍수 예방 사업' 부패 스캔들과 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부패 연루자들의 오만한 태도였다. 최근 필리핀에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홍수 예방 사업 부패 스캔들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지난 7월 국정연설에서 직접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15개 건설사가 담합해 총 1000억 페소(약 2조 4370억 원) 규모의 홍수 통제 사업을 독식했고 이 중 상당수가 부실 공사이거나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사업'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사촌인 마틴 로무알데스 하원의장을 포함한 하원의원 17명이 뇌물을 받았다는 폭로도 함께 나왔다.

여기에 해당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한 건설사 오너 부부가 언론 인터뷰에서 수십 대의 유럽 및 미국산 명품 자동차 컬렉션을 자랑하면서 4200만 페소(약 10억 2300만 원)짜리 롤스로이스 차량을 "우산이 무료로 딸려 온다길래 샀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는 극에 달했다. 홍수 피해가 잦은 불라칸주에 사는 한 학생 운동가는 AP에 "우리는 가난과 홍수로 집과 미래를 잃어가는데, 그들은 우리의 세금으로 긁어모은 막대한 재산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필리핀 당국은 이번 부패 스캔들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23년부터 올해까지 약 423억∼1185억 필리핀페소(약 1조300억∼2조8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태풍으로 홍수 피해가 잦은 필리핀이 홍수 예방을 위해 9800건이 넘는 홍수 예방 사업에 약 5450억 페소(약 13조 2000억 원)를 투입했지만 결국 대규모 부정부패로 이어진 것이다. 필리핀에선 해당 스캔들로 로무알데스 하원의장이 사임했고, 프랜시스 에스쿠데로 상원의장도 해당 사업 계약 업체와 연관설이 제기되며 교체됐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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