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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정상회담 직후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공동합의문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합의문이 굳이 필요하지 없을 정도로 서로 얘기가 잘됐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으로 국민 대다수가 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때다. 표현 한마디 한마디에 해설과 분석이 뒤따를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회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 대통령실 참모들 사이에서는 객관적 사실과 이에 기반한 홍보, 예상과 후속조치 등에 대해 정밀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엇갈린 기류가 좀 혼란스럽다.
집단사고(groupthink) 개념은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 예일대 교수가 연구보고서 '집단사고에 의한 희생들'(1972년)에서 처음 제시했다. '응집력 있는 집단이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며, 의견 일치를 위해 비판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응집력이 강할수록 만장일치를 위해 다른 사람이 내놓은 생각을 뒤엎지 않으려는 상태다. 그러면 그 압력이 지나쳐 현실 왜곡,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은 그가 꼽은 집단사고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61년 4월 17일 0시, 중무장한 쿠바 망명군 1500여 명이 CIA 등의 도움을 받아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쿠바 피그만에 상륙, 공중침투했다. 현장 정보는 틀렸고, 곧 발각돼 400명 넘는 사상자를 남긴 채 3일 만에 항복했다. 군사작전은 세계의 비난과 조롱거리가 됐고, 미국은 5300만 달러 상당의 인도적 물자로 포로석방 대가를 물어내야만 했다. 또 냉전 고조로 이어져 다음해 인류 역사상 가장 핵전쟁에 근접했다는 쿠바 미사일 사태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그 여파로 소련을 겨냥한 이탈리아와 터키의 중거리 미사일까지 철수하는 크나큰 전략적 굴욕을 맛봤다. 미국 이익에 거대한 훼손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국무·국방·법무장관, 안보보좌관, CIA국장 핵심 외교안보참모들만이 모여 적절한 조언 없이 '멍청한 침공'을 결정했다. 모두 미국 최고 대학 출신의 백인 초엘리트라는 동질성, 과도한 낙관주의, 반대 의견 억제, 외부 조언 차단, 특정 정보 과신 등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집단사고였다. 응집성, 동질성, 촉박성, 폐쇄성 등은 집단사고 강화 요인이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무대 뒤에서 벌어진 참모들의 머리를 쥐어짜는 논의는 외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알릴 필요도 없다. 메시지 또는 메시지 효과라는 정제된 상품만이 여론과 평가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정부나 정치권의 메시지는 그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성 극대화라는 목표가 있다. 메시지의 목적은 언제나 상대방을 설득해 자신의 의도대로 생각하게 하거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메시지를 구성해야 하는 건 원칙 중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를 잃는다. 신뢰를 잃으면 결과적으로, 장기적으로, 개인이나 조직 이익의 중대한 훼손으로 이어진다. 지난 정권들에서 적지 않게 보던 장면들이다. 일치된 견해의 압력으로 인한 집단사고는 대개 무오류, 합리화, 도덕성의 환상과 동조화, 집단 초병 현상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는 모두가 걱정했던 '관세 위협'에서 잠시 벗어나게 한 진통제 효과는 있었겠다. 투자인지 펀드인지 모호성, 투자 등 주체의 불분명, 한미 간 이견, 미국이 고집한다면 협상 자체를 깨야 한다는 한국의 원칙론 부각, 조지아 사태 등의 연이은 상황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다.
정치적 부담이 아주 컸던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내놓는 과정에서 참모들이 집단사고를 일으킨 요소는 없었는지 심각히 진단해 봐야 한다. 앞으로 이보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현안들이 수없이 있을 것이다. 9월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있고,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에는 한·미·중 정상이 함께 한다. 얼마나 중요한 행사들인가. 여론과 평가는 메시지 전달력, 메시지 신뢰성에 좌우된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하자 그 1년 전 피그만 침공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즉시 대통령 자문기구인 엑스콤 (ExComm· Executive Committee of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을 만들었다. 집단사고 예방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다양성과 비판적 조언을 위해 외부 인사와 외교안보 고위관료 12명으로 구성됐다. 케네디도 참석했던 엑스콤은 핵전쟁도 불사한다는 일부 군부 강경파의 의견 등 6가지 대안을 마련하고 이 가운데 해상봉쇄를 선택한다. 엑스콤이란 집단사고 예방 기구를 통해 13일 만에 인류 최대 위기 상황을 해결했다고 여러 공식 기록과 연구 결과들은 평가한다. 반대 의견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김명호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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