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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2일(현지시간)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3건의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공식 기소했다고 밝혔다. 아시아 최초의 전직 국가원수 피고인인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ICC 검찰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게 최소 76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간접적 공동정범'으로서의 형사적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이번에 공개된 공소장은 두테르테의 범죄 혐의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그가 2013년부터 2016년 사이에 자경단 등을 동원해 19명을 살해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혐의는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2016~2018년)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이 있다. 검찰은 그가 소위 '고가치 표적' 14명을 살해한 사건과, 하위급 마약사범들을 대상으로 한 소탕 작전 중 43명을 살해한 사건을 직접 지시하거나 방조했다고 보고 있다.
ICC 검찰은 공소장에서 "해당 기간 동안의 실제 희생자 규모는 훨씬 더 크고 수천 건의 살인이 일관되게 자행됐다"고 명시했다. 이번 기소가 '마약과의 전쟁' 기간 동안 벌어진 초법적 살인의 일부에 불과함을 시사한 것이다. 필리핀 당국의 공식 통계로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6000명 이상이지만 인권 단체들은 실제 사망자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실제로 재판정에 서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의 변호인단은 두테르테가 "여러 영역에서 인지 장애를 겪고 있다"면서 "재판을 받을 수 없는 건강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ICC도 그의 재판 적격성 여부를 먼저 판단하기 위해 혐의를 당사자에게 직접 고지하는 심리 절차를 연기한 상태다.
외신들은 지난 3월 마닐라에서 체포돼 네덜란드로 이송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화상으로 첫 심리에 출석했을 당시에서 "멍하고 허약해보이고, 말도 거의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지지자들은 이번 기소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현 대통령과의 정치적 불화에 따른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과거 ICC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적이 있다. ICC가 주권 국가의 협력 없이 피고인을 체포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3월 두테르테의 체포 및 이송 과정에서 마르코스 정부의 '암묵적 협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헤이그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지난 5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다바오시 시장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현재는 그의 아들이 시장직을 대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