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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추세는 통계로서 확인돼 놀랍기만 하다. 올 들어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883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에 따르면 외국인의 2분기 신용카드 사용액이 38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비(非)아시아권에서 방문한 관광객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비아시아권 관광객 비중은 전체 관광객의 10% 미만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13-15%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인사동과 청계천, 명동 등지에서 비아시아권 관광객을 보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이는 관광업계는 물론 자영업자들에게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K-콘텐츠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하기에 그렇다. 이렇게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 이유로는 K-콘텐츠 이외에 비자정책 완화, 원화 약세, 관광 인프라 확대 효과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K-팝, K-드라마, 영화, 웹튠, 뷰티, 한식 등으로 대표되는 K-콘텐츠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하겠다. 게다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K-Pop Demon Hunters)의 글로벌 메가 히트 여파도 상당하다.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은 전 세계 스트리밍 시장과 박스오피스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 전 세계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하며 단기간에 수천만 시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표곡 '골든(Golden)'은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콘텐츠와 음악이 시너지를 일으킨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흥행성과는 단순한 영화 차원을 넘어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이미 속편 논의가 진행 중이며 관련 캐릭터 굿즈, 공연, 게임화 기회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런 현상의 일등공신은 바로 K-팝이다. 2010년대와 2020년대를 관통하며 이수만·방시혁·박진영 같은 선구적 기획자들과 BTS와 블랙핑크, 세븐틴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국경을 마구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K-팝은 세계 대중문화 시장에서 주류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K-팝 아티스트들에게 열광한 수많은 해외 팬덤들은 한국어 가사로 만들어진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K-콘텐츠가 과연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콘텐츠의 획일화, 팬덤의 과도한 소비와 경쟁, 기획사들이 겪고 있는 성장통 등이 그것이다. 기획자 상대의 과도한 사법 리스크도 K-콘텐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잠재적 경쟁자인 J-팝(일본 팝)의 글로벌 스트리밍 점유율이 매년 성장하고 있는 것도 도전이 된다. K-팝의 아이돌 시스템과 팬덤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C-팝(중국 팝)의 아이돌 산업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K-팝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LPGA에서 주목할 만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LPGA에서 한국 여자프로선수들이 우승을 밥 먹듯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미국·일본·태국 등 다른 국가 선수들에게 밀려 우리 선수의 우승 소식을 듣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K-콘텐츠 산업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K-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기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 창의성, 글로벌 전략 그리고 팬들과의 건강한 관계가 필요하다. 기획자는 단순히 연예인을 배출하는 것을 넘어 문화·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다양한 공익적 가치 창출을 해야 한다. 정부는 K-팝 장려 정책을 통한 지원 및 투자, 공연장 등 인프라 지원, 창작자와 기획자 보호 및 역량 강화 지원 등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K-콘텐츠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업계의 의견을 늘 존중해 규제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K-콘텐츠는 단순한 음악, 애니메이션 산업이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수출상품이자 세계와의 소통창구라는 것을 기획사·정부·팬·미디어 등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건강하고 포용적인 산업 구조를 만드는데 모두 동참해야 한다. K-콘텐츠는 유행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건 세계에 대한 영향력이고 그 영향력을 건강하게 지속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K-콘텐츠는 제2의 '한강의 기적'처럼 우리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생태계를 잘 보호해야 한다.
이경욱 논설심의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