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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칼럼] 카타르 균형외교의 안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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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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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카타르는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내세운 인도적 균형외교 활동으로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2025년 들어 카타르 외교는 미증유의 경험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과 가자전쟁에 유엔과 국제사회가 무력감을 보이는 가운데 6월 23일 이란 미사일의 알우데이다(AlUdeida) 공군기지 타격에 이어 9월 9일에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수도 도하 주변 주거지역내 하마스 거주지를 폭격했다. 이것은 과거 카타르가 겪었던 외교적 갈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긴급하고 정당한 명분 없이 주권국가 영토가 공격을 받은 것이다. 이란은 6월 21일 자국내 포르도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폭격을 단행했다.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 양측의 카타르에 대한 공격은 중동뿐만 아니라 세계에 새로운 사례를 남겼다. 그리고 이란의 카타르 공격이 이스라엘에 학습효과와 자신감을 주었듯 향후 기타 지역에서 유사한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카타르 외교는 국영방송 알자지라(AlJazeera)의 표어 "의견과 또 다른 의견"(Opinion and the Other Opinion)이 시사하듯 대립된 양자 간의 공정한 중개(Mediation)활동을 지향하고 있다. 단지 의견 조정만이 아니라 분쟁의 내용에도 개입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서구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간의 중요한 타협과 인도적 지원으로 성과를 거뒀다. 2008년 레바논 정파 간 합의문서(Doha Agreement) 체결, 2008년 수단 정부와 다르푸르 무장단체 간의 도하 평화 협정 체결, 2010년 에리트리아-지부티 간의 국경 분쟁 타결, 201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 간의 안정화 합의, 2014년 하마스에 피랍된 이스라엘 군인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피랍된 미군 병사 석방 중개와 같은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카타르 내에 탈레반 사무소와 시리아 망명정부 대사관을 제공해 관련국간의 협상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실정치(Realpolitik)에서 관련국 간의 이해관계의 복잡성이라는 난제가 엄존함을 간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그간 하마스를 비롯한 아랍권내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카타르의 지원은 2014년부터 2017년간 이집트 및 걸프협력이사회(GCC) 국가들과 충돌을 야기해 대사 소환과 단교 위기를 초래한 바 있다. 평화구축을 위한 외교활동이 또 다른 외교적 갈등을 만든 아이러니였으며 이것은 금번 이란과 이스라엘의 카타르 타격 결정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외국인을 제외한 순수 자국민의 수가 약 30만 명 정도인 카타르의 균형외교는 미국과의 강고한 안보협력에 힘입어 전개되었다. 수도 도하에 인접한 알우데이다 공군기지는 2002년 미국중부사령부(USCENTCOM)의 전진사령부로 편제되어 전폭기와 전략비축 물자 그리고 정보통신기지가 주둔하고 있다. 중동 최대규모인 5천 미터 길이의 활주로를 운용하면서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다국적군의 중동 작전기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탈레반 같은 반체제 또는 근본주의 이슬람 단체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1996년에는 GCC 국가 중 최초로 이스라엘과 경제통상 협력약정을 맺고 도하에 이스라엘 무역대표부를 유치했다. 그러나 금번 무방비 상태로 맞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카타르의 주권과 국제적 위상은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고 이스라엘과 경제협력 관계를 개척했으며 중동 최대규모의 미국 공군기지를 유치한 국가로서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 3개국의 역학관계 속에 놓인 중간국가로서 경제력과 외교역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국력의 한계를 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카타르 균형외교의 강력한 후견국가 또는 성공적 협상 대상국가로 여겼던 이들 국가와의 외교에 있어서 예상치 못한 후과가 나타난 것이다. 모든 조약에는 만료일이 정해져 있고 또는 어느 일방이 요구할 경우에는 폐지 또는 재협상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처럼 외교에 국익 이외의 영구적 절대 가치는 없으며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미국은 1980~1988년 간 계속된 이란-이라크전에서 미국인 인질석방을 위해 이스라엘과 공조해 적대국가 이란에 무기를 공급해 전세를 뒤집었다. 따라서 카타르가 알우데이다 기지에 절대적 안보가치를 부여하면서 균형외교의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것은 단선적(單線的) 사고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균형외교의 딜레마라 할 수 있는 카타르의 외교활동에 대하여 몇 가지 질문이 제기되어왔다. 첫째로, 카타르가 성취한 평화는 장기적 합의인가 또는 일시적 휴전에 불과한 미봉책인가 하는 점이다. 둘째로는, 합의에는 당사자는 물론 분쟁에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행위자들이 동의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실행 과정에서 이들로부터 반작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역 질서 내에서 기득권을 가진 국가로서는 평화도출을 오히려 현상파괴로 느낄 수 있고 손해를 입을 경우에는 역으로 카타르에 안보상의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국가가 전개하는 균형외교는 곧바로 지역 내 국가 간의 역학구도에 변화를 주고 필연적으로 반작용을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동맹국의 압도적 안보 제공에 의존할 경우에도 자국의 군사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세계 최대규모의 미군기지를 유치해 두었어도 자주국방의 역량이 부족한 국가의 과도한 외교지평 확대는 오히려 안보에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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