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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황건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전례 없던, 민간이 화폐를 새로 만드는 기능을 갖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외화 관리에 대한 실수요자 거래 규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외환 유출 우려가 크다"며, 한국은 과거부터 달러가 부족한 국가였기 때문에, 외환 불안이 다시 발생하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입장이죠.
다만 스테이블코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황 위원은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디지털화 과정에서 거스를 수 없는 요소"라며, 도입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단계적인 발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죠. 한국은행은 그동안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꾸려 발행하고, 발행 규모 이상 자산을 상시 예치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또한, 담보 자산을 현금이나 예금처럼 즉시 활용 가능한 형태로만 구성하고, 준비금은 반드시 분리 보관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었죠.
그러나 시장은 각국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한국이 속도전에서 뒤처지면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기축통화처럼 쓰이고 있는 만큼, 원화스테이블코인이 하루빨리 제도권 안에 자리 잡아야 투자자와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해외 투자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꾸고, 다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환율 변동 위험과 환전·송금 수수료가 붙고, 해외 규제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떠안게 됩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비용을 최소화하고, 거래도 국내 감독망 안에서 관리돼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죠.
특히 외환 관리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해외 투자자와 국내 기업이 달러 대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무역·투자 대금을 정산하게 된다면, 달러 수요를 줄이고 환율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도 가능하다는 분석이죠. 또한 원화를 국제 통화로 한 단계 격상시킬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도 기대감이 나오고 있죠.
그럼에도 한국은행의 경계심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원화는 달러처럼 기축통화도, 엔화처럼 준기축통화도 아니어서 외부 충격에 환율이 크게 흔들려온 것이 사실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준비금과 환매 약속을 기반으로 한 만큼 신뢰가 흔들리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불안이 전이될 수 있습니다. 황 위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두고 민간의 화폐 창출 기능이라며 신중론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주요국이 이미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준비가 끝난 뒤라는 이유로 늦출 수는 없습니다. 결국 관건은 속도냐 안전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속도와 안전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과제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한국 금융의 경쟁력과 신뢰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