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병원·금융·행정 마비에 시민 분통… 복지 끊기며 취약층 생계 위협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929010015289

글자크기

닫기

설소영 기자

승인 : 2025. 09. 28. 18:15

우체국 금융 중단·택배 조회 지연
공무원, 수기 결재 등 아날로그 업무
모바일 신분증 기능은 일부 정상화
28일 오후 서울 중구 광화문우체국 우체국은행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우체국금융 장애 발생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27일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직접 피해를 입은 업무시스템이 96개로 확인됐다. /박성일 기자

"인공지능(AI)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모바일 신분증 하나도 못 믿겠어요. 이게 도대체 뭡니까. 언제 복구되는지 답답합니다." 경북 영천에 사는 김모씨(38)는 감기 걸린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았다가 모바일 신분증이 먹통이 돼 진료조차 받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김씨는 "밤사이 정부 시스템 중단 소식을 알지 못했다"며 "종합병원 접수 창구에서 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토로했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화재 여파로 모바일 신분증이 마비되면서 병원은 물론 금융·민원 창구까지 곳곳에서 시민 불편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네트워크 장비 복구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장비 전소와 이중화 시스템 미작동으로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소방청은 28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전산실 화재 현장에 대한 감식에 착수했다. 앞서 오전 10시에는 소방과 경찰, 국과수 등이 합동으로 모여 감식 절차와 방식 등을 논의했다. 이번 화재는 지난 26일 오후 8시 15분 작업자 13명이 배터리 이전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해 22시간 만인 27일 오후 6시께 완진됐다. 화재로 전산실(520㎡) 내부에 설치된 전산장비 740대와 배터리 384대가 전소됐다. 이번 사고로 647개의 정부 서비스가 중단됐다. 정부는 물리적 손상을 입지 않은 551개 서비스에 대해 이날 중으로 재가동을 목표로 복구를 진행 중이다. 핵심 보안장비는 전체 767대 중 763대(99%)는 오전 7시까지 복구를 마쳤다.

그러나 기획재정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경제 부처와 일부 민원 창구의 시스템은 복구되지 않은 상태다. 행정안전부(행안부)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총 647개 시스템이 차단됐으며 당초 70개로 알려졌던 직접 피해 시스템은 정밀 점검 결과 96개로 늘었다. 이 중 1등급 12개, 2등급 58개 시스템이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선제적으로 차단됐다. 전체 중 436개는 대민 서비스, 211개는 행정 내부망이다.

전산망 마비로 인해 국민의 일상생활은 물론 기업과 행정업무도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24, 주민등록 발급, 복지로 등 각종 서비스가 멈추면서 은행·법원 등 민원 창구는 혼란에 빠졌고, 우체국 금융 중단으로 송금·계좌 조회가 불가능해졌다. 추석을 앞두고 택배 배송 조회도 지연됐다. 복지 시스템 마비로 기초생활수급, 아동수당, 긴급복지 지원이 끊기자 일선 현장에서는 취약계층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다.

행정망도 마비됐다. 나라장터가 멈추면서 조달 입찰이 중단돼 중소기업들이 납품 일정을 맞추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입찰 자체가 안 돼 속만 타들어 간다"며 "공무원 내부망이 차단되면서 결재는 물론 부처 간 협업도 모두 멈췄다"고 했다. 중단된 서비스에는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정보공개시스템, 온나라시스템, 안전신문고, 조달청 나라장터, 권익위 국민신문 등이 포함됐다.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시스템, 성범죄자 알림e, 청소년증 발급, 중소벤처기업부 '중소벤처24'까지 광범위한 기능이 멈췄다. 소방청은 119신고를 전화·문자로만 접수하고, 경찰은 과태료·범칙금 고지서 발송을 연기한 상태다.


현재 일부 복구가 이뤄진 것은 모바일 신분증이다. 광주센터 재해복구(DR) 체계 전환으로 신규 발급·재발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능은 정상화됐다. 하지만 온나라시스템과 정부전자문서유통센터까지 멈추면서 부처 간 전자문서 유통이 불가능해졌다. 행안부는 각 부처에 '종이로 기안·결재하고, 문서 발송은 팩스·이메일·우편으로 대체하라'는 긴급 지침을 내려보냈다. 공무원들은 상대 기관의 팩스번호를 직접 찾아야 하는 '아날로그 업무'에 몰렸다. 

IT업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 전산 인프라 전반의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 관계자는 "AI·디지털 전환을 말하면서 정작 데이터센터에 대한 예산과 안전기준은 뒷전이었다"며 "관리 체계, 조직, 예산까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소영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