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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총리의 포문은 마하티르 모하맛(100) 전 총리가 열었다. 그는 지난 2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발표한 영상 메시지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영속화하기 위한" 자금과 무기를 계속 공급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자행하는 반인도적 범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가능하게 했다"며 안와르 이브라힘 현 총리에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아세안 정상회의 초청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분쟁은 2년 가까이 이어지며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를 낳았다. 최근 프랑스·영국·캐나다 등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인 미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마하티르 전 총리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안와르 총리는 최근 마타히르 전 총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초청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말레이시아는 팔레스타인과 가자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가장 강력하게 내왔다"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외교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 진실과 정의를 외치되, 현명하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회의를 오히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우려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는 외교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안와르 총리는 더 나아가 '경제적 실리'를 내세웠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라는 주장은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이익을 간과한 것"이라면서 "말레이시아가 미국에 수출하는 반도체만 해도 수십억 링깃에 달하며, 수만 명의 말레이시아인이 이 분야에 고용돼 있다. 만약 우리가 관계를 단절한다면, 고통받는 것은 바로 국민"이라고 역설했다.
또 "몇 달 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말레이시아를 찾았고, 다음 달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온다. 작은 나라가 이런 인정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세계가 말레이시아를 존중한다는 증거"라면서 이번 초청이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임을 강조했다.
전현직 총리의 이번 논쟁은 이슬람권의 오랜 현안인 팔레스타인 문제와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 사이에서 말레이시아가 처한 외교적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슬람 국가로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야 한다는 외교적 원칙과, 동시에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가 충돌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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