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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의류·신발 등 전통 제조업의 동남아 진출은 단순한 원가절감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과 패권 경쟁 속에서 첨단 제조업마저 미국·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자국 제조경쟁력 약화, 핵심 기술 유출, 양질의 일자리 감소라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중소제조업에게는 글로벌 시장 진입의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이제 한국형 마더팩토리, 즉 'K-마더팩토리'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임을 제안해본다. 일본이 1990년대 산업공동화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마더팩토리 전략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제품 설계·연구개발·품질관리를 본국에서 담당하고 해외 생산거점을 관리하는 방식이었지만, 현지공장의 기술력 향상과 해외거점 관리 소홀로 본래 기능이 약화됐다. 물리적 거리와 소통의 한계가 품질 관리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공지능·디지털트윈·자율공장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새로운 차원의 마더팩토리가 현실화되고 있다. 무인화·자율공장 시스템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통합 관리가 가능해졌다. 이는 단순한 생산거점 관리를 넘어 K-제조업의 본원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확산을 실현할 수 있는 혁신적 전략이다.
K-마더팩토리의 핵심은 'AI+DX(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기반의 스마트공장 기술이다. 본국의 마더팩토리에서 AI 기반 자율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디지털트윈 기술로 해외 생산거점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사이버물리시스템(CPS)를 통해 통합 제어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스마트공장 보급 사업을 통해 축적한 경험이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3만여 개 기업에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면서 확인한 것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AI 기반 자율운영이 제조업의 미래라는 점이다. 이는 과거 마더팩토리가 겪었던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임체인저다.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본국에서 해외공장의 생산성, 품질, 안전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다.
중소제조업에게 K-마더팩토리는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 확보의 핵심 전략이다. 과거처럼 값싼 노동력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요구하는 '현지 생산' 압력을 K-마더팩토리 전략으로 전환할 기회가 왔다. 해외에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되, 핵심 기술과 노하우는 본국 마더팩토리에서 관리함으로써 기술 유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현지화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
K-마더팩토리 실현을 위한 핵심 요소들이 있다. 첫째, 제조AI 솔루션 개발이다. 단순한 스마트공장 구축을 넘어 AI 기반 자율운영이 가능한 제조AI 솔루션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K-마더팩토리의 기술적 차별화 요소이자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둘째, 공급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다. 이러한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전문 공급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스마트제조 전문기업 제도'등을 통해 이들 기업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이 필요하다. 셋째, 스마트제조 전문인력 양성이다. '업(業)의 이해 + 디지털 기술 보유'라는 융합형 인재가 K-마더팩토리 운영의 핵심이다. 스마트제조 국가기술자격 제도 신설, 산학연계형 교육 확대 등을 통해 현장형 전문가 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K-마더팩토리는 단순히 중소제조업의 해외 진출 수단이 아니다.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패권 경쟁 시대에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다.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지난 10년간 구축해온 스마트공장 생태계와 축적된 현장 경험이 바로 K-마더팩토리의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
기술 유출 걱정 없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현지화 압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동시에 본국의 제조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혁신적 전략이다. 미국의 제조업 재건 압력이 거세지고, 중국과의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기술 강국을 넘어 진정한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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