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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아시아투데이 취재에 따르면 럼 서기장의 이번 방북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사안에 정통한 외교 관계자는 본지에 "럼 서기장이 10일 예정된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할 것"이라면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2019년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김 위원장이 베트남을 찾았던 것에 대한 답방 형식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럼 서기장의 방북은 베트남 지도자로서는 2007년 농 득 마인 당시 공산당 서기장의 방북 이후 18년 만이다. 1950년 수교한 양국은 올해로 양국 수교 75주년을 맞이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북한의 대외 강경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베트남에게는 양국 수교 75주년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이란 '당 대 당' 외교계기란 명분이 있다.
이번 럼 서기장의 방북에서 단기적인 경제 이익이나 군사적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번 방북에 판 반 장 국방장관 등이 동행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군사부문에서 양국이 유의미한 움직임을 취하기엔 베트남으로서도 대북 제재 중인 국제사회를 의식할 수 밖에 없고, 북한 역시 베트남과의 군사 부문 협력이 자칫 중국을 겨냥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만큼 양국의 협력도 당 대 당 차원과 농업·언론·문화·체육활동 및 청년 교류 등 제재 대상이 아닌 부문과 양국 간 우호관계를 다져온 비교적 전통적 부문들이 중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리성국 베트남 주재 북한 대사는 최근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차관과 만나 벼 품종 개량과 담수 양식 모델 등 농·어업 부문에서 베트남의 기술이전과 전문가 파견 등 협력 확대를 타진했다. 원산 갈마 지구 등 북한이 최근 관광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만큼 역시 제재 대상이 아닌 관광 및 인적 교류를 통한 활로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베트남이 이번 방북으로 얻게 될 외교적 성과는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에 미국·한국·북한 모두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주지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베트남 측은 지난 8월 이뤄진 럼 서기장의 한국 국빈방문 당시 우리 측에도 방북 가능성을 사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럼 서기장의 방북이 이뤄지는 시기 자체가 베트남으로 하여금 강대국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인 대북 외교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외교 무대에 어필함으로써 전 세계의 시선을 다시금 사로잡게 됐다.
내년 전당대회를 앞둔 럼 서기장의 위상과 입지도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럼 서기장의 전임자로 대나무 외교를 주창한 고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베트남의 외교를 대나무에 비견하며 "뿌리는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면서 줄기는 단단하고 확고하게, 가지는 유연하게 휘어 적응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방북은 이처럼 강대국의 압력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국가와 친구가 되면서도 민족의 이익과 '물을 파실 땐 그 근원을 기억하라'는 도덕적 원칙을 지키는 베트남 외교의 독립노선을 럼 서기장이 훌륭히 계승, 재차 확인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보수파에게도 "서방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셈이기도 하다.
북한은 과거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약 200명의 북한 조종사와 기술 전문가를 베트남에 파견한 바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북한군 조종사 가운데 14명은 전사하기도 했다. 이후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북한이 극심한 기근을 겪을 때 베트남은 본국의 여의치 않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1995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4만 톤(t)에 달하는 쌀을 지원한 바 있다. 베트남에선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베트남 농업 전문가들이 벼농사 기술을 전수하여 북한의 식량 위기 극복에 기여한 점에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