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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정씨 고택은 정손일이 봉강리에 처음 터를 잡은 이래 400여년간 이어져 온 곳으로, 호남지역 민가의 특징이 잘 남아있다. 집터는 예부터 좋은 땅, 즉 길지(吉地·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고 여긴 묏자리나 집터)로 꼽혔다. 한국 풍수지리의 시조로 알려진 도선국사(827∼898)가 설명한 '영구하해'(靈龜下海·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바다로 내려오는 형국) 중 거북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여겨 고택을 '거북정'으로 부르기도 했다.
영광정씨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이'(二)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안채는 '요'(凹)자 모양으로 뒤쪽에 사적 공간과 수납공간을 뒀는데, 보성 일대의 특징이자 당시 사회성을 잘 반영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고택은 주택 환경과 어우러져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측 계곡 건너에는 일제강점기 한학을 공부하는 서당으로서 기능하며 외부 손님을 맞고, 제실(祭室·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역할을 한 삼의당(三宜堂)이 있다.
1880년 호남 유림이 조정으로부터 명을 받아 세운 광주이씨 효열문(孝烈門)도 근처에 있다. 고택 안에서 남해안 득량만을 바라볼 때의 풍광도 뛰어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 및 근대기 민족운동, 해방 후 이데올로기 사건 현장을 담고 있어 역사적·사회적 가치를 잘 보여주는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