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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로] 내란이라는 단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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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혁 기자

승인 : 2025. 10. 17. 06:00

항의하는 김병주 의원<YONHAP NO-4919>
1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2025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12·3비상계엄에 대한 정부 국무위원의 내란 용어 사용이 적합한지를 놓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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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지환혁 차장
여권 인사들의 입에서 '내란'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내란이라는 용어 사용이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정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그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전 세계에 특사단을 파견해 민주주의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 정부 인사들이 내란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언어' 사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불법적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계엄령 발동이 헌정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사법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스스로 내란이라고 단정하고 정치적 수사로 사용하는 것에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내란은 헌법이 정한 가장 중대한 범죄다. 헌법 제84조는 내란죄를 이유로 대통령도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만큼 신중한 법 적용과 판단 절차가 요구된다. 법적 판단은 사법부의 재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정치적 단정이나 감정적 해석으로는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여권은 내란이라는 단어를 거의 선언처럼 사용한다. 최근엔 정부와 군 인사까지도 내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헌법의 언어가 정치의 언어로 변질되면, 감정의 언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국민은 사안의 실체보다 단어의 자극에 반응하게 되고, 진영 간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정부와 여당은 내란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반대 세력을 국가의 위협으로 규정하며 사회적 균열을 키우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하나로 묶는 대신 언어를 통해 국민을 나누는 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주도해야 할 것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다.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법에 따라 엄정한 재판을 통해 판단을 구하면 된다. 그러나 정부가 먼저 내란이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그 사안은 법적 판단의 영역을 넘어 정치적 상징이 된다. 국민은 사안의 실체보다 내란이라는 용어에 주목하게 되고, 사법 절차는 결국 정치적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형국에 놓인다.

헌법을 수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위법 행위를 단죄하는 것만이 아니다. 법의 절차를 지키고, 단어의 경계를 존중하며, 국가의 언어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형벌보다 절차에 의해 지켜진다.

민주주의는 분노보다 신중한 질서에 의해 유지된다. 때문에 내란이라는 단어는 결코 정치적 수사로 이용돼선 안된다. 내란은 헌정 질서의 마지막 경고음이기 때문이다. 그 단어가 법의 판단이 아니라 정치의 입에서 반복될 때 헌정 질서에 대한 신뢰는 약해진다. 정부가 헌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단어의 무게부터 존중해야 한다. 단어 하나에 담긴 헌법의 정신을 가볍게 여길 때 윗대가 만들어온 우리의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지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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