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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양국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해 왔다는 공통점을 보유한 만큼 이러한 유사성과 상호 공유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체코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문화예술차원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을 작곡한 드보르작을 비롯해 문학가로서 대표적인 작품인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아르누보 양식의 선도자로서 유명한 '알폰스 무하' 등이 있다. 특히 알폰스 무하의 '황도 12궁'과 '슬라브 서사시'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여행 차원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중의 하나인 '카를교'를 비롯하여 체코맥주로 유명한 '필스너', 체코여행 필수제품이라 불리는 '마뉴팍트라 맥주샴푸' 등 셀 수 없이 많다. 필자 또한 '이반 얀차렉' 주한체코대사와 체코에 대해 정겹게 이야기 나눈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프라하의 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잠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68년 8월 소련군은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워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알렉산데르 두브체크가 추진한 자유화 개혁은 짓밟혔고 시민들의 꿈은 무너졌다. 민주주의의 새싹은 다시 동토의 땅속으로 묻혀야 했다. 프라하 시내를 가득 메운 전차의 쇳소리는 자유를 향한 인류의 희망을 멈추게 했다.
그렇다면 그해 같은 시기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1968년 8월 24일 서울 남산야외음악당에서는 소련의 체코 침공을
규탄하는 대규모 범국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동시에 궐기대회가 개최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자유는 결코 짓밟힐 수 없다"고 외쳤다.
그런데 그날 무대 위에서 매우 특별한 장면이 펼쳐졌다. 박순천 여사와 영화배우 김승호씨 등 사회 각계 인사들의 연설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생 대표로 나선 고등학생 홍정식군이 규탄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중학생 동생 영식군은 형과 함께 밤새 손수 만든 소련기를 보따리에 담아 무대 위로 던졌고 곧 깃발은 불길에 휩싸였다. 한국 언론은 물론, 외신들도 이 장면을 보도했다. 타국의 자유를 위해 분노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행동은 냉전의 장벽을 넘어선 상징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그들의 용기가 체코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먼 나라의 비극에 공감하고 행동한 그 마음이었다. 한국 청년들이 보여준 연대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가 국경을 초월한다는 '세계시민적 감수성'의 실천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아직 산업화와 민주화의 초입기에 있었고 청소년들에게 국제 정치나 외교는 머나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들은 억압받는 민족의 고통을 '우리의 일'로 받아들였다. 이는 식민지와 전쟁의 상처를 겪은 한국 사회가 보여준 깊은 공감의 표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불과 18세와 13세의 나이였다는 점이다. 어린 두 형제가 보여준 결단은 "작은 목소리라도 자유를 향한 불꽃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줬다. 민주주의는 결코 거창한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의를 믿는 청년들의 순수한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줬다.
올해는 한·체코 수교 35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은 원전을 넘어 반도체, 전기차, 방위산업 등으로 협력의 폭을 넓히며 전략적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 57년 전 서울의 청소년 형제가 체코의 자유를 위해 던진 작은 불꽃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두 나라를 진정한 형제국으로 잇는 첫걸음이자 자유의 가치를 영원히 되새기게 하는 시대적 울림이 아닐까.
프라하의 봄은 체코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인류 보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봄의 비극 앞에서 서울의 청소년들이 보여준 행동은 '국경을 넘어선 자유의 공명(共鳴)' 그 자체였다. 이제 곧 다가오는 10월 28일 체코공화국 독립기념일을 양국 국민들이 더 각별하게 맞이했으면 한다.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홍대순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