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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올림픽이 끝나고 국내 자동차 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어느 무렵 자동차 판매가 주춤하였다. 이유인즉슨 자동차 증가로 서울의 교통체증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자동차 구매를 망설이기 시작한 것이다. 교통체증을 이유로 영업부서에서 자동차 생산목표를 줄여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오히려 자동차 생산목표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이유는 교통체증이 심해지면 정부가 무슨 수를 쓰든지 도로망을 건설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대도시권이 확대되어 사람들이 자동차를 더 구입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정책을 담당하는 정치인과 관료는 매 순간 다수의 국민이 겪는 불편과 어려움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인은 선거를 신경 써야 하고 관료는 민원을 줄이고 정책적 성과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정치인과 관료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글레이저 교수와 마찬가지로 자동차의 증가로 인한 교통체증이 결국 도로망 확충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이다.
정치인과 관료는 제한된 임기 동안 일한다. 이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고 고위 관료가 바뀌게 되면 정책적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탈(脫)원전에서 원전의 부활로, 다시 원전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로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핀 키들랜드(Finn Kydland)와 에드워드 프레스콧(Edward Prescott)은 이른바 '시간 불일치 모형(Time Inconsistence Model)'을 통해 정치인과 관료의 정책 목표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강물이 자주 범람하는 지역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일단 사람들이 모여 들어와 살게 되면 정치인과 관료는 별수 없이 강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제방을 쌓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위험한 지역이므로 제방을 쌓지 않겠다는 정책을 펼치더라도 사람들이 살게 되면 정치인과 관료도 어쩔 수 없이 제방을 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 사람들이 거주하기 위해 모여든다는 것이다.
당정 협의를 거쳐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대 61%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와 같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전력과 수송부문에서는 현재 수준보다 절반 이상 그리고 산업부문에서는 온실가스를 25%가량 감축해야 하는 수준이다. 현재의 석탄 및 천연가스 발전을 10년 안에 어떻게 대체할지에 대한 대책 없이 NDC만 제시한 셈이다. 우리 제조업의 생존이 위협받고 발전부문에서 화석연료는 거의 사라져야 할 수준이다. 값싼 화석연료를 없애고 새롭게 발전설비와 전력망을 갖춰야 하니 전기요금은 적지 않게 오를 전망이다. 지난달 젠슨 황이 방한하여 주기로 한 GPU 26만장을 돌리려면 엄청난 전력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전력은 어디서 안정적으로 얻겠다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이번 정부는 2030년 그 임기가 끝난다. 문제는 다음 정부다. 2035년까지 NDC를 다음 정부가 완수할 수 있을까? 현 정부는 결국 다음 정부에 폭탄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과 관료는 얼마 안 있어 떠나가지만 기업은 그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목표와 계획은 정부가 세우지만 그 너머를 보고 대책을 세우고 책임을 지는 주체는 결국 기업이다.
조성봉 숭실대 초빙교수는…
동국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를 받고 에너지경제연구원 및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 그리고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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