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km의 발걸음으로 되살린 조선의 일상
과거의 이야기가 오늘의 감각과 만나는 자리
|
열세 살 아이가 품은 한 장의 서찰, 그리고 그 서찰을 전하기 위해 400km를 걸어가는 여정은 거대한 사건의 서술보다 작고 유심한 시선으로 조선의 삶을 들여다본다. 아이의 걸음으로 도달한 풍경 속에는 전쟁과 혁명의 표면이 아니라 그 너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숨결과 마음의 복잡한 결들이 있다. 역사를 다시 쓴다기보다는, 기록의 틈새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밝히는 작업에 가깝다.
보부상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중요한 서찰을 전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서찰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닿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는 아버지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아이에게까지 숨겨진 비밀이었다. 다만 그 안에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뜻이 담겨 있다고만 조용히 남긴다. 아이는 그 말을 믿고 아버지와 함께 길에 오른다. 그러나 전라도로 향하던 중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남겨진 것은 아이와 서찰뿐이다. 글을 모르는 아이에게 서찰은 여전히 닿을 수 없는 언어이지만, 전해야 한다는 마음만은 분명하다. 아이는 서찰의 주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 말과 표정들이 아이에게는 또 다른 세계의 문이 된다. 작품이 말하는 배움은 책상 위의 학습이 아니라, 발로 걷고 몸으로 부딪히며 얻는 삶의 감각이다. 아이가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곧 성장의 기록이며,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장터를 떠돌며 익힌 민요와 구연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부르는 소리는 우는 사람을 달래고,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잠시 어루만지고, 길을 모르는 이에게 잠깐의 숨을 건넨다.
작품은 소리를 단순한 음악적 삽입이나 장식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소리는 장면을 잇는 실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언가를 잇는 언어로 기능한다. 소리의 울림은 시대를 넘어 관객에게 닿고, 이것이 동화적 서정과 역사적 사실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힘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품는다.
에이치프로젝트는 이야기의 무게를 견디는 연극을 만들어 온 창작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허투루 쓰인 문장이나 장치 없이 서사의 완성도를 우선하고, 관객이 극장 안에서 자신의 서사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이들의 태도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방식은 유지된다. 인물의 감정은 길 위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장면 간의 연결은 극적 전환이 아닌 감각적 호흡으로 이어진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연출가의 해석보다 관객의 경험 쪽으로 이동할 여지가 있다. 관객은 어느 순간 아이와 함께 길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발을 딛고, 소리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연극적 방식은 작품을 무겁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길 가능성을 품고 있다.
|
|
2025년 제10회 여성연극제는 세대와 감각을 잇는 공연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 작품은 1894년과 2025년 사이의 긴 시간을 한 명의 아이가 걷는 발걸음으로 잇는다. 역사라는 말이 차갑고 먼 언어로 머물지 않고, 지금 우리의 일상과 감정 속에서 다시 뛰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 있다.
결국 관객이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질문은 과거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질문이다.
연극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2025년 11월 13일부터 16일까지 서울예술창작센터 서울씨어터 202에서 공연된다. 제작은 에이치프로젝트와 프로젝트준이 맡았으며, 예술감독 김도훈, 연출 준, 무대 임민, 조명 이금철, 음악 남기오와 김은지, 음향 임한빈, 무대기술 이지인, 분장 윤미란이 참여한다. 출연은 유태균, 양형호, 이재희, 강선숙, 박주원, 박다연, 이종박, 박병호, 이승현, 함지현, 강동현, 임현명, 손지인, 배상민이 무대를 채운다.
400km의 길 위에는 목적지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 닿는 것이 이 여정의 끝은 아니다. 아이가 길 위에서 보았던 얼굴들과 들었던 소리들, 몸으로 익힌 글자들은 모두 그가 살아갈 시간을 바꾼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 남는 감정 또한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한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우리 각자의 행복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 지금, 그것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