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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 이성구 총괄 프로듀서 “과거의 성공 방식이 만든 벽, ‘호라이즌’으로 허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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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권 플레이포럼팀 기자

승인 : 2025. 11. 17. 14:12

13일 부산 벡스코 지스타 2025 제 1전시장에서 열린 개막 오프닝 세션에서 엔씨소프트 이성구 부사장이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를 소개하고 있다. /김휘권 기자 
'리니지' 모바일 신화를 이끌었지만 '리니지 라이크'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이성구 엔씨소프트(이하 엔씨) 부사장이 '지스타 2025' 무대에 섰다. 엔씨의 고질적 문법과 완전히 결이 다른 신작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를 공개하는 자리였다.

소니의 핵심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이 신작은 단숨에 이번 지스타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특히 '리니지'의 성공 방식을 가장 잘 아는 그가 리니지와 가장 먼 게임을 들고나왔다는 것 자체가 엔씨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15일 부산 벡스코에서 플레이포럼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성구 부사장은 엔씨가 리니지의 굴레를 벗어던질 유일한 길로 기술력과 신뢰를 제시했다.

먼저 그는 오랫동안 곪아왔던 내부 문제를 털어놓는 한편 엔씨가 처했던 상황을 '성공이 만든 그림자'라고 진단했다. 과거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의 연속적인 성공은 엔씨를 급격히 성장시킨 반면 회사 전체가 안일함에 빠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부사장은 "회사 내 다른 개발팀들까지 리니지 성공 문법만을 따라가며 자가 복제를 반복했다"고 시인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리니지의 문법을 좋아하지 않는 수많은 게이머와의 벽을 만든 동시에 엔씨를 비판의 표적이 되는 프레임에 갇히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자책이다.

이러한 위기감과 문제의식은 엔씨 내부에서도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아이온2', '신더시티',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 등이 자정작용의 일환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부사장(CBO, 최고사업책임자) 직책을 맡은 지금, 그는 과거의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도전을 직접 증명해낼 위치에 섰다. '리니지 맨'이 아닌 '찐게이머'로 업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이 이번 변화의 출발점이다.
엔씨소프트 이성구 부사장 /엔씨소프트
이 부사장은 '드래곤 퀘스트'에 대한 열정으로 게임업계에 입문했다. 아울러 '파이널 판타지', '이스' 같은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JRPG)은 물론 '라스트 오브 어스', '고스트 오브 쓰시마' 시리즈까지 다양한 콘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DNA'를 갖췄다.

김택진 대표와 플레이스테이션5(PS5) 타이틀을 서로 추천할 정도로 게임에 대한 애정이 깊다.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 프로젝트 역시 2017년 원작을 플레이하며 '정말 끝내준다'고 감탄했던 팬심에서 시작됐다.

그가 가진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은 엔씨가 직면한 가장 민감한 문제, 즉 비즈니스 모델(BM)에 대한 입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먼저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에는 '가챠(뽑기)'가 없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약속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선택이다. 호라이즌 IP 팬덤이 있는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데다, 원작 개발사가 있는 네덜란드(암스테르담)는 법률적으로 '랜덤 박스' 판매가 금지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최우선 목표가 매출이 아닌 신뢰를 우선하겠다는 엔씨의 전략적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뢰를 회복하는 열쇠로는 엔씨의 본질인 기술력을 꺼내 들었다.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는 원작의 감성을 엔씨의 기술력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 있다. 원작 개발사와 긴밀히 협력해 원작과 동시간대 미국 남서부 '데드랜드'에서 시작하는 방대한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아울러 원작의 '풀캐스터' 액션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환경에 맞게 구현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이는 '쓰론 앤 리버티(TL)'처럼 특정 지점으로 이동하는 컷신 느낌이 아닌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심지어 새에게도 걸 수 있는' 수직적, 입체적 전투로 구현해낼 계획이다.

MMO로서의 재해석은 시스템 전반에 적용하고 있다. 원작에서 주인공 에일로이만 사용하던 '포커스' 기능은 MMO의 특성을 살려 '우리 부족에게 몬스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일종의 협력 플레이용 '핑' 시스템으로 진화할 계획이다. 또한 원작이 가진 '몬스터 헌터'의 액션 구조를 차용하고 발전시켜, 대규모 협력 전투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성구 부사장은 "사실 PC 버전 최적화는 완벽한 수준이지만, 역동적인 액션을 모바일 환경에서 구현하는 것이 최대 난관"이라고 털어놨다. 트레일러 공개 후 달린 2천 개의 댓글을 밤새 다 읽었다며, '이걸 핸드폰으로 어떻게 하라고'라는 유저들의 우려에도 공감했다.

그는 "100% 수동 조작은 모바일에서 불가능하다"며 "30프레임 유지를 목표로 최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미 오토' 방식의 조작 체계를 도입해 모바일에서도 쉽고 멋진 액션을 경험하도록 사용자 경험(UX)을 설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변화의 중심에 선 22년 차 개발자의 부담감은 상당하다. 이 부사장은 "걱정이 너무 많아 잠을 심각할 정도로 못 자는 날이 많다"고 토로했다. 22년간 몸담은 회사에 대한 감정은 과거의 자신에게 "도망쳐!"라고 농담하고 싶을 만큼 복잡하다고 털어놨다.

리니지 성공 뒤에 가려졌던 전략적 실패를 인정하고 '드래곤 퀘스트'를 좋아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기술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다짐도 이어졌다. 이성구 부사장은 "'얄밉지만 엔씨가 게임은 잘 만든다'는 평가를 되찾는 것, 엔씨의 본질인 기술력을 다시 입증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휘권 플레이포럼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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