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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패션 기업들, 돌고 돌아 다시 ‘청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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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영 기자

승인 : 2025. 11. 2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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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의 라움 웨스트 매장 전경. / 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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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를 마주 본 패션 상권이 조용히 재편되고 있습니다. 단기 팝업으로 빼곡해진 성수 상권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최근 다시 '청담·압구정·도산' 일대의 플래그십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습니다.

특히 2030세대의 움직임이 뚜렷합니다. 남들과 다르지만 과하지 않은 이른바 '조용한 럭셔리'를 찾는 흐름 속에서, 오래 머물며 브랜드의 깊이를 체감하는 방식이 새로운 소비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체류시간이 곧 소비인 공식이 자리 잡으면서 플래그십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맞춤 수선이나 프라이빗 핏팅, VIP 퍼스널 케어 등 디테일한 서비스를 넘어 최근에는 카페·레스토랑까지 들여오며 하나의 '체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매장에 와서 가방을 사지 않더라도, 플래그십 안 레스토랑에서 만두 하나 먹고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청담 일대 플래그십에는 젊은 고객 유입이 뚜렷합니다. 대표적으로 2009년 문을 연 LF의 '라움 웨스트'는 최근 3년간 2040 고객 비중이 45%에서 60%까지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매출 상승률도 30%를 넘어섰습니다. 이탈리아 브랜드 '포르테 포르테' 등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진 브랜드를 선제적으로 들여온 점이 주효했다는 설명입니다. 프랑스 향수 브랜드 불리의 청담 플래그십 역시 각인·포장 등 개인화된 서비스가 호응을 얻으며 최근 3개월 매출이 전년 대비 55% 증가했습니다.

상권 변화에 맞춰 브랜드들의 투자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한섬의 '타임'은 지난 6일 약 562평 규모의 대형 플래그십을,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제이린드버그는 지난 4월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을 각각 청담에 열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자벨마랑은 12년 만에 청담 플래그십을 리뉴얼했고, 페라가모도 지난 7월 새 단장을 마쳤습니다. 루이비통은 매장 안에 첫 상설 레스토랑을 열었고, 구찌는 '구찌 오스테리아'를 이태원에서 청담으로 이전했습니다.

청담에서 이어지는 도산공원 일대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에르메스·설화수·갤러리아로 이어지는 기존 럭셔리 벨트에 알로, 슈프림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합류하면서 상권의 결이 한층 넓어졌습니다. 구매력이 탄탄한 3040과 취향 소비에 민감한 20대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요즘 서울에서 보기 드문 소비 지형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물론 진입장벽은 높습니다. 임대료와 공간 조성 비용은 웬만한 브랜드로선 쉽지 않은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성수 팝업에 하루 3000만~5000만원 쓰느니, 차라리 플래그십으로 브랜드의 서사를 쌓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성수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임대료가 크게 뛰어오른 상황이라, 장기 브랜드 자산을 쌓는 쪽이 계산이 선다는 얘기입니다.

업계를 들여다보며 바라본 청담·압구정·도산 라인은 이제 명품 플래그십을 넘어 미식·라이프스타일·국내 브랜드까지 아우르는 '플래그십 2.0 시대'로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돌고 돌아, 패션의 축은 다시 청담으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차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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