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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으로 삽시다’의 이시형 박사, 중년에게 건네는 100년 인생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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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11. 20. 16:48

신간 ‘아버지, 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북콘서트
불안한 시대의 중년을 향해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자리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태도와 마음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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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박사가 강연장에서 청중을 향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북콘서트가 열린 강연장에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청중들이 조용히 자리를 채웠다. 무대 위에는 아흔을 넘긴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펴낸 신간 '아버지, 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의 메시지를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다시 강연자로 무대에 섰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말투에는 나이를 잊은 듯한 평온함이 있었고, 동시에 한 문장 한 문장이 오랜 세월을 통과한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무게를 품고 있었다. 이날의 북콘서트는 단순한 신간 소개를 넘어, 인생의 전환점에 선 이들에게 건네는 한 노학자의 조용한 조언이자 위로에 가까운 시간으로 흘러갔다.

강연에서 그는 먼저 지금의 중년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중년은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40대부터 70대까지 이어지는 폭넓은 시간대라고 규정했다. 부모를 돌보면서도 성인이 된 자녀를 여전히 책임져야 하는 구조, 늦어진 결혼과 경제적 부담, 갈수록 개인화되는 사회가 겹쳐지며 중년의 시간이 과거보다 훨씬 길고 무거워졌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등산으로 보면 50대는 산 정상에 오른 시기다. 내려가는 길이 처음보다 더 힘들지만, 내려오면서 비로소 세계가 넓게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하며 조급함보다 시야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고령화와 초고령화의 속도에 비해 늙음을 준비하는 방식은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짚었다. "우리 또래는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대부분 늙을 준비를 못 했다"는 말 뒤에는 지인들의 경험이 덧붙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지 개인적 일화가 아니라, 예고 없이 닥쳐오는 체력 저하와 역할의 변화, 일터에서 물러나는 순간이 중년에게 어떤 혼란을 주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노안이 찾아온 날부터 시작해 체기가 늘고, 자녀와의 관계가 달라지고, 직장에서도 주도자에서 조언자로 역할이 전환되는 과정은 실감나는 설명과 함께 객석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특히 그는 한국 사회에서 늘어나는 독거노인의 문제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혼자 사는 노인은 같이 사는 사람보다 평균 수명이 14년이나 짧다. 이웃 관계가 생명선이다"라는 말은 통계 이상의 경고였다. 이어 그는 해외 사례를 들며 초고령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사람과 환경, 그리고 걷기 좋은 동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의 블루존 2.0 정책을 예로 들며, 개인의 건강과 고독, 지역 환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노쇠의 신호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오랜 임상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났다. 그는 "나이가 들면 체중이 줄고 보폭이 좁아진다. 이때가 신호다"라고 말하며 운동과 걷기습관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또 노년기의 위험 요소로 자주 언급되는 화장실 낙상 사례를 들며 청중에게 "넘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경고했고, 이에 덧붙인 "그래서 요강이 필요하다"는 말은 객석의 긴장을 잠시 풀어주는 유머로 변주됐다. 이 순간은 90세 강연자의 노련함이 만들어낸 작은 온기처럼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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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에는 이시형 박사의 저서와 함께 관련 주제를 다루는 여러 도서가 함께 전시돼 있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그는 강연에서 신간 '아버지, 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에 담긴 취지를 차분히 설명했다. 책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에게 아버지의 마음으로 건네는 조언을 모은 것으로, 그가 지금까지 발표해온 정신건강 관련 저서들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다. 그는 오랜 시간 살아오며 경험한 배움과 아쉬움, 그리고 다시 공부해야 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글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다양한 중년 환자들을 상담하며 관찰한 심리적 변화와 어려움,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도 함께 책의 내용에 반영했다고 덧붙였다.

책이 제시하는 핵심은 중년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 축이다. 마음의 관리, 목표의 재설정, 일상적인 공부, 시간 관리, 인간관계의 재정립이 그것이다. 그는 이 다섯 가지가 중년 이후의 생존 전략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긴 시간을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중년을 지나며 정신적으로 다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목표는 나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하며, 배우는 습관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중요해지고, 인간관계는 선택과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중년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그의 생각은 책 곳곳에 흐르는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였다.

책의 형식 또한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구조다. 1부에서는 아버지에게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중년 이후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다루고, 2부에서는 그간의 심리학적 통찰과 건강, 공부, 관계에 대한 조언을 정리했다. 마지막에 실린 가족 간의 편지는 책의 정서를 잔잔하게 수렴한다. 아들, 딸,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해 온 비서가 쓴 진솔한 편지는 저자와의 긴 관계와 세월의 질감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나직한 문장들이 독자에게도 따뜻한 울림을 건넨다.

강연의 후반부는 이 박사의 삶이 응축된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는 "중년은 처음으로 걱정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나이"라고 말하며, 이 시기를 지나면 노년은 준비 없이 오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시간이 남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새롭게 주어졌다는 관점 전환이었다. 인생 후반전이라는 표현은 흔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올 때에는 오랜 진료와 경험이 더해져 구체적인 조언으로 이어졌다. 지나온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고, 자신의 속도와 체력에 맞는 생활 구조를 다시 설계하라는 말은 단순한 자기계발 조언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강연이 마무리될 즈음 그는 이번 책이 독자에게 일상의 어느 순간에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사회자가 다음 강연과 사인회 일정을 소개하자 참석자들은 조용히 줄을 서 책을 건넸고, 그는 이름과 메시지를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사인회 자리에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함께한 모습도 눈에 띄었고, 누군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며, 누군가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듯했다.

이날의 북콘서트는 한 권의 신간을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깊이 던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중년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지점을 지나고 있다. 이 박사는 그 복잡함을 피하지 말고, 차근차근 바라보며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의 조언은 결국 오늘의 중년에게 필요한 용기와 태도,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권하는 말에 가까웠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금, 그는 그 시대를 살아갈 실제적인 기술과 감정의 방향을 보여줬다.

그의 조언은 단순했지만, 강연이 끝난 뒤에도 조용한 울림으로 남았다. 준비된 노년은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 남은 시간은 여전히 배움의 시간이라는 말, 그리고 자신을 중심에 두어도 괜찮다는 말은 긴 강연이 마무리된 뒤에도 조용한 여운처럼 남았다. 이번 북콘서트는 한 노학자가 지나온 시간을 토대로 다음 세대를 향해 보내는 작고 단단한 조언이었고, 동시에 불안한 시대의 중년에게 조용한 안부를 건네는 자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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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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