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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50년 만 최악 수해’ 베트남에 풍긴 한국 핫도그의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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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5. 11. 27. 07:00

TOPSHOT-VIETNAM-WEATHER-FLOOD <YONHAP NO-3490> (AFP)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베트남 닥락성 호아틴 지역에서 22일(현지시간) 희생자의 장례식이 준비되는 가운데, 주민들이 관을 옮기고 있다. 베트남 재난 당국은 이번 홍수로 90여 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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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이라 했다. 냐짱(나트랑)과 닥락을 비롯한 베트남 남중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물폭탄에 곳곳이 무너지고 잠겼다. 90명이 넘는 목숨이 흙탕물에 쓸려갔고 농부들의 전 재산인 가축과 집이 떠내려갔다. 도시는 거대한 갈색 호수로 변했다. 자연의 포악함 앞에 인간은 무력했다.

베트남은 '국난 극복'이 특기인 나라다. 천 년의 중국 지배, 백 년의 프랑스 식민지, 그리고 세계 최강 미군과의 전쟁을 견뎌낸 힘은 단결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부가 나서기도 전에 전국 각지에서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 행렬이 남중부로 향했다. "온전한 잎이 찢어진 잎을 감싼다"는 그들의 오랜 속담은 재난 앞에서 빛을 발한다. 그들은 비를 함께 맞으며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고 있다.

다행히 그 행렬에는 한국 교민들도 서 있다. 많은 교민이 십시일반 성금이나 구호물자를 보태고 있고, 일부는 직접 구호 물자를 실어 달려가고 있다. 베트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진짜 이웃'들의 땀방울이자, 우리가 알던 한국의 정(情)이다.

이런 와중에 냐짱에서 한국식 핫도그 가게를 하는 한 한국인은 차들이 잠긴 냐짱 시내 사진과 함께 "이렇게 물에 잠기고 난리인" 상황에서 배달 없이도 최고 매출을 찍었다며 "행복하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타인의 재난을 자신의 '대박'으로 치환하는 그 천박한 상혼(商魂)은 엄청난 논란이 됐고 베트남 네티즌들은 분노를 넘어 경멸을 보냈다.

핫도그 가게 주인의 그 경박한 글은 베트남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일각의 왜곡된 시선이 무의식중에 투영된 결과일지 모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치민시에서 터진 한국인 간 살인 사건까지 겹치면서 교민 사회가 쌓아 올린 온정마저 빛이 바래고 있다. 정부와 교민들이 백방으로 뛰며 진심을 전해도, 악취가 향기를 손쉽게 덮어버리듯 베트남인들의 눈에 우리가 '돈은 많지만 품격은 없는 나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는 까닭이다.

정부가 외교란 길을 닦아도 그 길을 오가며 관계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베트남인들은 100만 달러의 지원금보다, 침수된 거리에서 자신들의 아픔을 조롱하지 않고 함께 슬퍼해 줄 이웃을 원한다. 돈으로 환심을 살 수는 있어도 진심을 살 수는 없다.

선진국은 단순히 돈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품격이 있는 나라다. 지금 우리가 베트남에 보여줘야 할 것은 화려한 경제적 수치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감과 연대 의식이다. 수해 현장에 풍긴 핫도그의 악취가 역겨운 이유는 그 안에 공감이란 인간의 기본 양념이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흙탕물이 빠지고 나면 핫도그 가게 소동도 잊힐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재해를 겪은 이들의 뇌리에 새겨진 한국의 모습은 오래 남을 것이다. 비에 젖은 이웃에게 필요한 건 계산기가 아니라 우산이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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