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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 위법여부 누가 판단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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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27. 00:01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6년간 유지돼 온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복종 의무'가 사라진다. '복종'이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뀌고, 상관의 지시가 '위법'하다고 판단되면 거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2017년 이미 이런 내용이 입법예고 됐다가 '위법 판단기준의 모호성' 등으로 의견 청취 단계에서 멈춘 적이 있어 당시와 똑같은 논란을 불러올 '재탕'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사혁신처는 25일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1949년 제정된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57조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복종을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꾸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보태 구체적 직무와 관련한 상관의 지휘·감독에 의견 제시,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행 거부, 의견제시·이행거부 이유로 불리한 처우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2017년 개정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복종'을 '따를 의무'로 순화하고, '구체적 직무와 관련한 상관의 지휘·감독에 의견 제시'를 추가한 것뿐이다.

인사혁신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면서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기반과 수평적 직무 환경 조성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모든 법안의 개정이 그렇듯이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2017년 당시 논란이었던 '위법한 지시·명령에 대한 정의', '어느 수준의 위법인가를 누가, 어떻게 판정'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어 정부 스스로 문제점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위법 명령에 거부할 근거 마련'이라는 정치적·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슬그머니 다시 꺼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76년간 유지된 복종의무가 폐지돼 위법한 상관 지시에 거부하려면 위법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식의 두루뭉술한 이유로는 모호성을 더 키울 뿐이다. 위법에 대한 판단기준이 정치 성향과 시대 상황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더 명확하고 분명한 식별 장치가 필요하다. 일례로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검사들의 행위를 놓고 '의견 제시'와 '항명'이 충돌하는 경우처럼 위법성 판단의 주체가 필요할 수 있다. 자칫 '정치적 판단'이 개입돼 오히려 공직사회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단 주체와 기준의 모호성 등으로 한 차례 좌초됐던 공무원 복종의무 삭제와 위법 지시 거부는 좋은 취지를 담고 있다. 이번에는 이전과 같은 혼선과 논란이 반복되지 않고 법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공직사회가 정권이 도구가 아닌 명실상부한 공공(公共)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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