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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보육이 불안한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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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18. 11:15

박강수 마포구청장
박강수 마포구청장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수십조 원의 재정이 투입됐지만 반등의 조짐은 없다. 국가가 아무리 지원금을 늘려도 아이를 맡길 안정적 보육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부모들은 출산을 주저하게 된다.

그동안 정부 정책은 출산장려금과 같은 금전적 지원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부모들의 현실적 어려움은 돈보다는 보육시간과 직장생활의 불안정에서 비롯된다. 예고 없는 야근, 방학 돌봄 공백, 아이가 아플 때 등원 불가 등으로 인해 부모는 양육과 직장을 병행하기 어렵다. 출산을 가로막는 본질은 돌봄의 불안정이며, 이는 국가만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문제는 우리 보육체계가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정·민간·국공립·직장어린이집이 따로 운영돼 격차가 고착화됐고, 선호도가 가장 높은 국공립어린이집은 최근 정원 미달에 따른 통폐합이 늘고 있다. 줄어드는 영유아 인구 속에 국공립어린이집을 축소하기보다는, 보육 시설 인프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장애아 통합보육·야간·긴급돌봄 등 공공 기능을 높여야 한다. 정원 미달 지역은 프로그램 확충과 전문 인력 배치로 대응하며 국공립어린이집의 수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민간어린이집 또한 전체 보육시설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 지금처럼 보육의 민간영역으로 남겨둘 수 없다. 국가가 표준 회계·운영 기준을 강화해 공공성을 높이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민간 기관에는 국공립에 준하는 지원을 제공해 민간 보육을 국가책임 체계 안으로 편입해야 한다. 즉, 보육을 공공재로 보고 국가가 전체를 책임지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영아 보육의 최전선이며 부모에게 가장 가까운 가정어린이집은 시설과 안전 부담을 개인이 떠안는 구조로 이대로는 지속이 어렵다. 국가가 시설 개선·안전 설비 지원, 교사 인건비 안정화, 지역 야간·휴일 돌봄 연계 등을 통해 가정어린이집이 지역 영아 보육의 핵심 기반으로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직장어린이집 역시 맞벌이 부부의 출산 결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대기업은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만 중소기업은 설치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가는 시설·운영비 매칭 지원, 산업단지·중소기업 밀집지역 공동직장어린이집 도입, 근무 형태·근로시간과 연동된 탄력적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보육정책 재편의 전제조건은 국가 긴급돌봄망 구축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부모에게 돌발 상황이 생겨도 돌봄을 대신할 국가적 대안이 없다면 출산 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소한 긴급 상황에서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는 안전망은 필수다. 이외에도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 개선은 보육 질의 핵심이다. 근무환경이 불안정하면 이직률이 높아지고 보육의 질은 떨어지며 이는 부모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인건비 기준 현실화, 휴게시간 보장,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이 필요하며, 안정적·균질한 서비스를 위해 보육교사의 공무원화 또한 검토돼야 한다.

정부는 무상급식·무상교육 등 교육 복지를 확장해 왔지만, 학교 이전 단계의 보육 안정화가 우선돼야 한다. 초등 입학 전 보육의 부담을 국가가 덜어주지 못한다면 어떤 출산장려 정책도 실효성이 낮다. 영유아 보육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떠받치는 기반 산업이자 사회적 투자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육체계 전면 개편과 국가책임의 강화다. 아이의 탄생부터 성장을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 때, 부모는 비로소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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