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88년 시작해 이제 40년을 바라보는 국민연금 제도 역시 나라와 국민의 믿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약속의 한 사례다. 안정된 노후를 위해 사회를 믿고 오롯이 그 목표를 지켜가기 위해 구성원이 지금의 수입을 건네는, 이른바 '사회적 맹세'인 셈이다. 사회와 구성원이 맺은 약속 아래 우리는 나를 위해서, 또 미래 세대를 위해서 이를 이행해 왔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국제 정세의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오랜 시간 지켜져 온 약속이 흔들리고 있다. '노후 안정'이라는 목표 아래 맺어진 신뢰가 급등하는 환율 문제의 소방수로, 또 주택 공급을 위한 재원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시사되면서다.
이번 정부 첫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대한 적잖은 시선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향후 수십년간의 노후를 좌우하게 될 연금 구조개혁이 막을 올리는 한편, 앞서 언급한 다양한 문제에 국민연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는 자리가 됐다.
중책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도 여느 때보다 만만치 않다. 가깝게는 구조개혁에 대한 모두의 목소리를 듣는 한편, 제도의 본분이 위협받지 않게끔 현명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또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서는 어느 세대도 제도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한 장기적인 시각 아래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안목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정파성과는 거리를 둬야할 때다. 어느덧 1400조원을 훌쩍 넘어버린 국민연금을 다루는 자리인 만큼, 이사장이라는 직책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무게감을 키울 수 있는 용이한 수단으로 쓰여오기도 했다. 그 목적 아래 '안정성'이 우선이 돼야 할 국민연금의 운용이 밀려나는 모습도 보여왔다. 국민연금를 둘러싼 위기의 '골든타임'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만큼, 더 이상의 정치적 활용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흐름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급속도가 붙은 초고령화와 주거 문제, 그리고 대내외적인 경제적 불안정성까지 오늘 우리 사회를 둘러싼 과제는 지난날 거쳐온 난관을 넘어 새로운 해결책을 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본래 나아가고자 했던 길이다. 모든 이의 안락한 여생을 위해 1988년 첫 발을 뗀 국민연금 제도의 본질을 지켜가야 하는 것은 정부가 저버릴 수 없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이를 이끄는 국민연금 이사장 역시 그 의미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숱한 위기가 다가온 지금,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이제라도 그 짐을 짊어진 이가 그 책임감을 더 크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민연금의 '장'이라는 직책을 명망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리의 존재 가치를 실현하는 목표 그 자체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