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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비닐 한 장'을 없애는 차원을 넘어선다. 연간 52억병에 달하는 생수 생산량을 고려할 때 감축되는 플라스틱 양만 해도 2270톤에 이른다. 분리배출의 번거로움을 덜고 고품질 재생 원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현장에서의 연착륙은 또 다른 문제다. 정부가 1년의 '전환 안내 기간'을 두고 QR코드 스캔 장비 보급과 POS 시스템 정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에게 이번 변화가 '친환경 동참'이 아닌 '운영의 짐'으로 다가가지 않도록 세밀한 행정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도 간과할 수 없는 과제다. 기존 라벨에 빼곡히 적혀 있던 수원지, 성분 정보, 유통기한 등 핵심 정보는 이제 병마개나 QR코드 속으로 들어간다. 스마트폰 사용에 능숙하지 않은 디지털 취약계층이나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싶은 소비자들에게 QR코드는 때때로 장벽이 될 수 있다. 기술적 전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직관적으로 정보를 식별할 수 있는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지켜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기업들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무라벨 전환은 기업 입장에선 라벨 제작 비용과 부착 공정을 줄일 수 있는 '비용 절감'의 기회이기도 하다. 절감된 비용이 이윤 창출로 끝날 게 아니라 소비자 가격 안정이나 친환경 기술 개발로 재투자될 때 비로소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1995년 먹는샘물 판매가 합법화된 이후, 생수 시장은 30년만에 3조원 규모의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우리는 깨끗한 물을 마시는 대가로 더러운 플라스틱을 배출해왔다. 무라벨 제도는 그 과오를 씻어내기 위한 첫 단추다.
투명해진 생수병은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 환경을 위해 편리함을 포기할 준비가 되었는가. 2026년, 라벨을 벗어던진 생수병이 환경을 향한 진심 어린 약속이 될지, 아니면 단순한 규제의 결과물이 될지는 정부의 꼼꼼한 정책 집행과 기업의 책임감, 그리고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