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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영 기자

승인 : 2026. 01.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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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아쉬운 것 없이 살았다. 현모양처를 얻어 자식까지 낳았지만 도박과 마약에 빠지며 가문의 재산을 한순간에 탕진한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 몇 년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긴다. 전우들은 모두 죽고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온 그는 밑바닥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비극은 멈추지 않는다. 아들은 학교 교장선생님의 부인에게 수혈을 해주다 숨지고, 딸은 아이를 낳다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부인 역시 오랜 병치레 끝에 자식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안고 눈을 감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위는 직장 사고로, 손자는 배가 고픈 나머지 콩을 급하게 먹다 체해 죽는다. 중국 작가 위화가 쓴 소설 '인생'의 주인공 푸구이의 삶이다. 고난의 연속,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떠나보내는 삶을 지켜보다 보면 "이렇게까지 인생이 안 풀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들어 이 소설이 유독 자주 떠오르는 이유는,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소기업의 현실 또한 푸구이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경기 불황, 인력난, 원자잿값 상승이라는 거대한 파고는 중소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통계는 이 위기가 체감이 아닌 현실임을 보여준다. 2025년 5월 기준 전국 어음 부도율은 0.4%로 집계됐다. 불과 석 달 전과 비교해 10배 급등한 수치다. 같은 달 부도 금액은 7880억원으로 2년 만에 가장 많았다. 자금 흐름이 막히며 중소기업들이 하나둘씩 버티는 한계선에 다다르고 있다는 신호다.

금융권에서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024년 하반기 이후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7% 안팎까지 상승하며 위기 신호가 뚜렷해졌다. 연체 확대는 결국 부도와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법정으로 향하는 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5년 1~5월 법인 파산 사건 접수는 92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8% 증가했다. 경기 회복을 기다리며 버티던 기업들마저 더는 시간을 벌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영업자의 상황은 더욱 참혹하다. 2024년 폐업 신고 사업자 수는 100만 8000여 명.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연간 폐업자 100만명을 넘어섰다. 개인사업자만 따져도 92만명 이상이 문을 닫으며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은 85%를 웃돌았다.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은 40% 수준에 불과하다. 열 곳 중 여섯 곳은 창업 후 5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진다. 노력과 성실함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압박이 일상이 됐다.

푸구이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늙은 소에게 말을 건네며 황혼 속으로 걸어간다. 온갖 고통을 겪고도 원망 대신 담담히 하루를 살아내는 그의 모습은 인생의 목적이란 결국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연속된 비극 속에서도 이들은 분노보다 인내를, 항변보다 책임을 택해왔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서가 아니다. 대기업과의 거래가 끊기고, 직원들을 떠나보내며 생사의 기로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현실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조용한 행보는 어쩌면 가장 위대한 선택일지 모른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희망의 증거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대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장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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