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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 그런 논의가 거센 분야가 있다. 홀로 살아가기 어려운 이들에게 이런 가정의 기능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복지시설이다. 장애인 인권 보장과 자립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시설'이 마구잡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보기에 장애인 복지시설은 단순히 생활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예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한 복지시설에 거주하던 장애인은 후천적 전신마비로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지인을 만날 수도 없는데다 가족과도 연락이 뜸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가 평상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가족이자 친구는 바로 함께 거주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비슷한 나이대와 같은 성별로 구성된 그 복지시설에선 늘상 나오는 밥의 메뉴가 무엇인지, 맛은 어떤지, 요즘 걸음이 뜸해진 봉사자의 근황은 어떤지 등의 대화가 오가며 그들 나름의 일상과 웃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많은 종사자들과 봉사자들이 힘을 모아야 했다.
문제는 타인의 보조없이는 누구를 만날 수도, 제대로 된 식사도 하기 어려운 신체적 한계 상황에서 탈시설이란 미명 하에 물리적으로 분리됐을 때, 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립에 대해선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 정도에 따라선 오로지 활동지원을 돕는 복지사에만 이들의 관계망이 좁혀질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대책이 고립사를 막기 위한 인공지능(AI) 센서라면 너무나 무책임하다. 어쩌면 시설 내 학대보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분리된 가정 내 학대가 수면 아래 잠길지도 모를 일이다.
장애 여부와 중증도를 떠나 생애주기로 봐도 독립을 원하는 시기와 돌봄이 더 중요한 시기가 다를 것이다. 비장애인도 삶의 여러 위기에서 재활을 위해 시설 거주가 필요한 때도 있듯이, 장애인의 삶은 그 다양함이 논의되지 않는 듯 하다. 획일적인 '탈시설' 논의가 이어질 뿐 어떻게 하면 이들이 관계망을 넓히고 자립 및 재활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 기능 중심의 설계와 재편 방향 논의는 멈춰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아파트에 컨시어지 서비스가 생기듯 장애인 거주시설에도 필요한, 사생활 보호 등 각각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개선과 변화는 더딘 것이다.
정작 재가 장애인들의 고립사 현황에 대해서 보건복지부는 파악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통합돌봄은 내달부터 발을 떼겠지만, 치매노인 등에게 제공되는 현 재가요양서비스부터도 수혜자와 가족들이 진정으로 만족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논의의 물꼬는 시설 거주 여부가 아닌, 장애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넓히는 데에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