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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사 부족이라는 오진, 진짜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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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25. 18:29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
윤석열 정부 당시 2000명이라는 대규모 의대 증원안이 발표됐을 때,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학업과 수련을 멈추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 여파는 의료 공백으로 이어졌고 응급실과 중환자실, 필수과 진료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발생했다. 의료시스템은 한 번 균열이 생기면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상당수가 복귀했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의 정상화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을 것과, 실패한 의대정원 문제를 원점 재검토해야 함을 줄기차게 촉구했다. 더블링으로 파행 중인 의대 교육이 정상화되도록 구체적 계획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의료 붕괴'는 누구나 체감하는 현실이었기에 정치권에서도 의협의 주장을 경청하고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 역시 의료전문가들의 우려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내년 490명 증원을 발표했다. 혹자는 과거 2000명 증원안에 비해 규모가 대폭 줄었다고 말하지만, 단순한 숫자 비교로 본질이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근거와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2027학년도 490명 증원은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2025년 사태로 휴학했던 학생들과 군 복학생 인원이 동시에 복귀할 경우, 기존 정원에 증원 인원까지 겹쳐 일시에 대규모 인원 집중이 불가피하다. 현재 교육 인프라도 이미 한계상황에 가깝다. 강의공간, 실습여건, 수련병상, 지도전문의 인력 등 모든 측면에서 물리적·구조적 제약이 예상된다. 의학교육평가원이 강조해온 교육가능 상한선 원칙이 충분히 고려됐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증원은 곧 교육의 질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부실교육, 부실인력, 부실의료, 그 다음은 무엇이겠는가?

정부가 근거로 삼는 국민 여론의 실체 또한 보다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 응급실에서 장시간 대기하다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경험,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사를 찾지 못했던 기억이 '의사 부족'이라는 인식으로 확대된 측면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필수과 기피의 원인, 지역의료 인프라의 불균형, 왜곡된 보상체계와 과도한 법적 부담이라는 구조적 요인을 해소하지 않은 채 숫자만 늘리는 방식은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이번 증원의 명분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제시했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가 지필공(지역·필수·공공의료)을 선택한 뒤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충분한 유인책 없이는 해당 분야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어렵다. 적정보상 등 기피과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유인책이 필요하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 문제 역시 합리적인 제도 개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의료와 무관한 사유로 면허가 제한되는 현행 제도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를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 교육여건 검증이 어려운 해외 의과대학 졸업생에 대한 인증 기준 강화, 의사·의대생의 현역 입대로 인한 핵심·필수의료인력 이탈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증원된 인력이 지역과 필수 의료분야에 충분히 정착하지 못할 경우, 인력 쏠림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의료인력 추계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임상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는 구조로 개편하고, 급변하는 환경을 고려해 추계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 인공지능 기반 진단과 판독 기술의 확산, 디지털 헬스 발전, 인구 감소 추세 등 다양한 변수도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이러한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공급을 일률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은 향후 수급 불균형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증원 발표가 논의의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전국 의과대학의 교육여건을 면밀히 점검하고, 실제 교육 가능한 인원을 객관적으로 산정해야 한다. 의료계와 의학교육협의체를 구성해 정책을 재점검하고, 교육현장의 실태를 투명하게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정책 결정에 따른 결과와 책임 역시 명확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

지금의 결정은 향후 수십 년간 의료 체계를 규정하게 된다. 한 번 늘린 정원은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이미 시작된 의료시스템의 균열을 더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보완하고 재설계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이 단순한 인원 부족인지, 구조적 시스템의 불합리성인지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의료전문가단체와 협력해 의료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 논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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