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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의 중국 정치·산업 四季] ‘소유’에서 ‘경험’으로…춘절 소비 지형의 질적 전환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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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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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동국대 겸임교수
중국인들에게 춘절(春節)은 단순한 명절 그 이상의 묵직한 사회적, 경제적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으로 춘절은 광활한 대륙 곳곳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한데 모이는 혈연적 결속의 시간이자,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풍요를 기원하는 문화적 의식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인 산업화와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수억 명의 인구가 일제히 이동하는 이른바 '춘윈(春運)'이라는 거대한 인구 이동은 곧 폭발적인 내수 소비와 직결되는 거대한 경제 활성화의 엔진으로 변모했다. 한 해 동안 모은 부(富)를 고향 가족을 위한 선물인 '녠훠(年貨)' 구매와 '훙바오(紅包)'에 아낌없이 쏟아붓는 이 시기는, 중국 내수 시장에 진출한 모든 기업들에게 결코 놓칠 수 없는 최대의 대목이자 혹독한 시험대이기도 했다.

필자가 LG전자 재직 시절, 중국 광저우(廣州) 주재원으로 중국 내수 시장의 최전선을 담당하던 때에도 춘절은 한 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매우 핵심적인 변곡점이었다. 새해 시작과 함께 연간 판촉 예산과 제품 라인업을 재점검하고, 1월 말 무렵 춘절 실제 판매를 위한 세부 계획을 모두 확정 짓고 나면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다"라는 비장한 분위기가 전 조직에 퍼져 나갔다. 당시 중국 내수 시장을 견인하는 3대 축은 연간 기준으로 춘절, 노동절(勞動節), 국경절(國慶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절기(節氣)였고, 이 기간은 우리 현장조직에게 단 하루도 쉴 수 없는 치열한 실적 경쟁의 전장(戰場)이었다. 베이징(北京) 헤드쿼터(HQ)는 연휴 내내 일일(Daily) 단위로 판매 지표를 점검했고, 상하이(上海), 선양(瀋陽), 광저우 등 주요 거점 법인들의 실적을 실시간으로 교차 비교하며 피를 말리는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거대한 대륙의 오프라인 유통망을 선점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제조업, 특히 글로벌 기업임에도 중국 현지시장을 깊숙이 공략하고자 했던 우리에게 부여된 숙명과도 같은 1년 단위의 엄격한 시간표였다.

그러나 14억 인구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이 오프라인 유통망 중심의 '절기 공식'은 중국 내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상거래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근본적인 해체와 재편의 과정을 겪게 된다. 알리바바(阿里巴巴·Alibaba)와 징둥(京東·JD.com) 등이 주도하는 11월 11일 광군제(光棍節)나 상반기의 6.18 쇼핑 축제 등 이른바 '온라인 전용 절기'가 새롭게 등장하며 실물 경제의 수요를 거대한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것이다. 중국 데이터 분석 기관 신툰(星圖數據·Syntun)의 통계 자료에 근거할 때, 2025년 광군제 누적 거래액 기준 1조 6,950억 위안(한화 약 320조 원)이라는 수백조 원의 천문학적인 거래액이 단 며칠 만에 창출된 이 거대한 온라인 소비 축제 기간에는, 내수 제품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해외 직구(직접구매) 물량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 결과, 과거 기업들이 각 지역의 오프라인 대리점에 선행적으로 상품 재고를 비축하고 전통적인 명절 연휴를 기해 밀어내기식으로 판매고를 올리던 일차원적인 유통 방식은 점차 그 산업적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처럼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거대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상당 부분 흡수되자, 역설적으로 춘절이나 국경절 같은 전통적인 명절은 그 경제적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과거 대형 가전제품이나 고가의 소비재를 앞다투어 장만하던 '소유의 시기'에서, 이제는 14억 내수 인구가 일제히 이동하며 여가와 문화, 그리고 '경험'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거대한 '여행 및 서비스 특수' 기간으로 그 성격이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소비 지형의 변화 속에서 맞이한 2026년 2월 하순의 춘절은, 현재 중국 경제의 실질적인 회복 탄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기상도라 할 수 있다. 올해 중국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공식 연휴를 이례적으로 9일간으로 연장했다. 이는 단순히 국민들에게 긴 휴식을 제공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대한 유동성을 인위적으로 창출해 여행 및 서비스 생태계를 강제로라도 회전시키겠다는 국가 주도의 치밀한 기획이었다. 정부가 '시간'이라는 거대한 판을 깔아주자, 억눌렸던 중국 중산층의 지갑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열리기 시작했다.

이번 춘절 특수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합리적 가치 탐색'과 '국경을 넘나드는 경험의 확장'이었다. 춘절 연휴를 목전에 둔 지난 2월 초순,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루이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등 주요 명품 매장 앞에는 수십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새벽 4시부터 대기하는 '오픈런'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들이 혹한의 날씨를 뚫고 한국을 찾은 이유는 분명하다. 자국보다 최대 80만원가량 저렴한 가격차이(Arbitrage)를 영리하게 누림과 동시에, 해외여행이라는 고급 경험재를 능동적으로 소비하기 위함이다. 과거 관광버스를 타고 면세점을 휩쓸던 맹목적인 단체 관광객 중심의 싹쓸이 쇼핑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개별 관광과 가치 소비로 뚜렷한 질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하이엔드 브랜드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이나 끌로에(Chloe) 역시 춘절을 겨냥한 한정판 컬렉션을 쏟아냈다. 글로벌 3대 경영 컨설팅 기업이자 명품 산업 분석에 정통한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의 분석처럼 중국 명품 시장이 5~6%의 한 자릿수 안정적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소비 생태계가 붕괴된 게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 차이를 찾아 국경을 넘는 쪽으로 소비의 질적 전환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거시적인 통제와 방향 설정이 시장의 물결을 어떻게 뒤바꾸는지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최근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따른 '한일령(限日令)' 효과가 겹치면서 동아시아 관광 동선이 급격히 재편되었고, 일본행을 포기한 거대한 관광 수요가 자연스럽게 대체지인 한국으로 대거 방향을 틀었다. 시장조사기관 차이나트레이딩데스크(CTD)의 전망처럼 23만~25만 명에 달하는 유동성의 거대한 이동은 제주도의 복합리조트 객실 예약과 외국인 전용 카지노 수요 상승으로 이어졌고, 도심 비즈니스 호텔을 운영하는 파르나스호텔(Parnas Hotel) 등 국내 관광 및 유통 산업은 오랜만에 찾아온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공산당이 정치적 논리로 물길을 틀자 옆나라 한국의 서비스 산업이 그 혜택을 흡수하는 구조다. 정치적 리스크라는 거시적 환경이 동아시아 관광 공급망의 물결을 단숨에 뒤바꾼 셈이다.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중국경제는 단순한 부동산 붕괴나 내수 침체라는 이분법적 단어로 온전히 정의될 수 없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기와 방식은 디지털 플랫폼과 크로스보더(Cross-border) 직구의 고도화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전통적인 명절은 정부의 거시적 통제 아래 거대한 서비스와 문화적 경험을 소비하는 기간으로 진화했다. 필자가 광저우 주재원 시절 경험했던 것처럼 오프라인 매장에 제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실적을 독려하던 과거의 향수로는 더 이상 중국 소비자의 굳게 닫힌 지갑을 열 수 없다. 국가가 주도하여 설계한 거대한 경제적 흐름 속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중국 중산층의 안목에 맞춰 압도적인 문화적 가치와 세련된 경험을 유연하게 실행해 내는 기업만이 이 험난한 사계(四季)의 변화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게 될 것이다. /김동영 (중국경영연구소 부소장 /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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