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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기본조약 서명 61년…신오쿠보 한글거리 넘어 공급망·안보협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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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도쿄 특파원

승인 : 2026. 06. 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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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61년을 맞은 가운데 도쿄 신오쿠보 일대에는 한글 간판을 단 음식점과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 최영재 도쿄 특파원
도쿄 JR신오쿠보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한글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틀어 2km 일대에 한글로 김밥, 치킨, 화장품, 아이돌 굿즈를 내건 상점들이 골목마다 이어진다. 이 거리는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저녁시간에는 일본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뒤섞여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다. 한국어 안내문과 일본어 메뉴판이 한 공간에 붙어 있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서명으로 출발한 한일관계가 61년을 지나 도쿄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 장면이다.

한일 양국은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기본관계조약에 서명했고, 같은 해 12월 18일 비준서를 교환해 국교를 정상화했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상처, 재산청구권, 재일한국인 법적 지위, 어업권 등 무거운 쟁점을 안고 열린 외교관계였다. 61년이 지난 지금 한일관계의 현장은 조약문과 외교문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오쿠보의 거리, 하네다공항의 한국행 노선, 청년 교류 현장, 한일 정상의 안보·경제 협의 테이블로 넓어졌다.

민간 교류는 이미 과거 어느 때보다 두꺼워졌다. 일본 외무성은 2024년 한일 상호 왕래자 수가 1200만명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도쿄 도심에서 한국 음식과 K팝, 한국 화장품을 접하는 일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 일본 젊은층이 한글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한국 관광객이 일본 지하철 노선을 따라 맛집과 쇼핑 거리를 찾는 풍경도 양국 관계의 바닥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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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와세다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와세대 동아리 '시나위'가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 있다./최영재 도쿄 특파원
다음 세대의 접점도 만들어지고 있다. 와세다대학의 일본인학생들이 앞장서서 만든 '한일청년파트너십'은 오는 8월 8일부터 11일까지 도쿄 미타카시 시민협동센터에서 제19회 한일 학생 토론 행사를 연다. 한국 대학생 20명, 일본 대학생 25명, 스태프 25명 등 약 70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행사를 이끄는 이카리야 마사키 한일청년파트너십 회장은 행사 자료를 통해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시민 기반의 소통 공간"을 만들자는 문제의식에서 행사가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행사는 단순한 친선 모임이 아니다. 2020년 한일관계가 냉각된 시기에 시작돼 올해 제19회를 맞았고, 지금까지 누적 1000명 이상의 한일 청년이 참여했다. 올해 토론 주제도 역사와 문화유산, 경제, 소셜미디어, 교육, 콘텐츠, 지역문제 등으로 짜였다. 갈등을 피하는 교류가 아니라, 서로의 인식 차이를 직접 마주하고 대화로 풀어보려는 현장이다.

신오쿠보의 한글거리가 한일관계의 소비와 문화 현장이라면, 미타카의 학생 토론장은 관계의 다음 세대가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한류와 관광이 가까워진 한일관계를 보여준다면, 청년 토론은 그 관계가 정치 상황에 흔들릴 때도 이어질 수 있는지 묻고 있다. 한일관계가 정부 간 합의만으로 유지되는 시대를 지나, 생활과 네트워크 속에서 버티는 단계로 들어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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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와세다대 재학생인 이카리야 마사키 한일청년파트너십 회장이 2025년 12월 12일 와세다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최영재 도쿄 특파원
하지만 2026년 한일관계의 무게중심은 문화교류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달 19일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중요광물을 포함한 공급망 협력, 에너지 공급망 확보, 한일 및 한미일 안보협력,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확인했다. 61년 전 국교정상화가 관계를 여는 출발점이었다면, 지금의 한일관계는 중국발 공급망 불안, 중동 정세, 북한 위협 속에서 실제 협력 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일본 정부가 최근 한일관계를 설명할 때 반복하는 단어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교류, 화해, 미래지향이라는 표현이 앞섰다면 이제는 중요광물, 에너지안보, 공급망, 억지력, 한미일 협력이 전면에 나온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산업에 필요한 핵심 물자의 안정적 확보는 한국과 일본 모두의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중동 불안은 양국의 에너지 수입 구조를 동시에 흔들 수 있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한미일 공조의 실효성을 시험한다.

갈등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강제동원, 위안부,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는 언제든 한일 여론을 흔들 수 있는 현안이다. 일본 정치권 안에서도 한국과의 협력 확대를 안보·경제상 필요로 보는 시각과 역사 문제에서 양보로 비칠 수 있다는 경계감이 공존한다. 한국 역시 대일 협력 확대가 국내 여론의 검증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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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한일 정상/연합뉴스
그럼에도 양국은 관계를 악화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국면인 셈이다. 중국의 수출규제와 공급망 재편은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을 동시에 압박하고, 중동 위기는 원유와 물류 비용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 북한 위협은 한일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일 억지체계 전체의 시험대가 됐다. 안보·경제협력은 늦추면 양국 모두 손해를 보는 구조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61년을 맞은 도쿄의 표정은 기념식장의 축사보다 거리와 청년, 산업, 안보 현장에서 더 선명하다. 신오쿠보의 한글거리가 가까워진 한일관계를 보여준다면, 미타카의 학생 토론장은 다음 세대가 갈등을 대화로 넘기려는 장면이다. 1965년의 조약문 위에 2026년의 한일관계는 생활교류와 경제안보, 안보협력을 동시에 쌓아 올리는 단계로 들어섰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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